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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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 <15> 문학(3) 거듭된 시련 속에서 영근 인간 구원의 문학- 구상의 시

인생사 격랑마저 품은 구도적 문확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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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ㆍ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시인 구상(具常)은 2004년 5월 11일에 작고했다. 시인의 8주기가 며칠 안 남았다. 한 시인의 생애가 타락과 패륜으로 점철돼 있을지라도 시가 주옥같은 경우가 있다. 보들레르ㆍ랭보ㆍ베를렌 같은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이 그랬고 전과 10범의 장 주네가 그랬고 마약에 의지하다 자살한 게오르크 트라클이 그랬다. 그들의 타락한 삶에는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지만 남긴 작품은 세계문학사에 뚜렷한 별이 됐다.

 한 시인의 생애에 시련의 파도가 이렇게 쉴 새 없이 엄습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시에서만은 구도적 사색을 통한 철학적 깊이와 영성이 깃든 사상적 넓이로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원대한 세계를 이뤘으니, 그가 바로 시인 구상이다.



#거듭된 시련

 구상 시인이 서울을 떠나 원산에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원산교구 한 성당의 부설학교 교사로 발령이 난 덕분이다. 아버지가 쉰에, 어머니가 마흔넷에 시인을 낳아 어릴 때 별명이 `만득이`였다. 8남매 중 다섯이 전염병 등으로 죽고 셋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세 명 중 큰형이 일본에 가서 공부하다 관동대지진 때 희생됐다. 지진으로 땅에 묻혀 죽은 것이 아니라 폭도들 손에 타살돼 시체를 찾을 수도 없었다. 이 일이 준 충격은 작은형을 신부의 길로 이끌었다. 막내 구상은 일본대학 종교학과에서 공부했다. 생의 구경적(究竟的) 의미를 탐색해보고 싶어서다.

 유학을 마치고 원산으로 돌아와 북선매일신문 기자를 하다 광복을 맞게 됐다. 광복의 기쁨에 넘쳐 원산 일대 시인들을 규합해 동인지 「응향」을 만든 일이 생의 시곗바늘을 크게 돌려 놓았다. 평양의 문학예술동맹은 구상 시인의 작품에 대해 `반인민적 반동시`라고 낙인을 찍은 뒤 조사단을 원산으로 급파했다. 인민재판을 앞둔 시인에게 그 사실을 귀띔해준 사람이 있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 남한으로 오게 된 구상은 어머니와 형의 안부를 자나 깨나 걱정하는 이산가족이 됐다. 아래는 문제가 된 시 `여명도`의 일부다.
 
 "말굽 소리/ 말굽 소리/ 창칼 부닥치어/ 살기를 띠고/ 백성들의 아우성/ 또한 처연한데// 떠오는 태양과 함께/ 피 토하고/ 죽어가는 사나이의 미소가/ 고웁다."
 
 공산당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북한 당국의 눈에 백성들의 아우성이니, 죽어가는 사나이의 미소가 곱다느니 하는 사회 비판의 시는 용인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몸을 피해 있다 당국의 분노가 수그러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던 터에 6ㆍ25전쟁이 일어났다. 종군작가단에 들어간 구상은 인천상륙작전 후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원산까지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려 했는데,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만다.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펴며 내려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구상은 뒤늦게 두 가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배교를 강요한 공산군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형의 총살과 어머니의 죽음을. 휴전 이후 구상은 명절만 되면 북녘 하늘을 우러러보며 가슴을 쳤다.
 
 "어머니/ 신부 형이 공산당에 납치된 뒤는/ 대녀 요안나 집에 의탁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관에나 모셨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산소도 헤아릴 길 없으매/ 더더욱 애절탑니다." -한가위, 제2연
 
 어머니의 시신이 어디에 안치돼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시인은 이산가족이 된 이후 언론인으로 살아가며, 원산에서 만났던 의사 서영옥과 경북 왜관에서 재회해 결혼한다. 묘하게도 시인이 걸린 폐결핵이 두 사람을 부부지간으로 만든다.
 
 #시인의 사랑과 질병

 시인이 폐병에 걸려 요양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서영옥은 다니던 병원도 그만두고 한 번 보고 가슴에 담아뒀던 사람을 찾아 나섰다. 길을 물어가며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 남자를 찾아 깊은 산길을 헤맨 것이다. 인가가 없으니 제때 끼니를 먹을 수도 없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깊은 산 속에서 사흘 밤낮을 헤맨 끝에 그녀는 구상이 사는 초막 앞에 이르러 쓰러지고 만다. 남자를 병간호하겠다고 찾아간 서영옥은 오히려 그로부터 간호를 받아야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 평생을 같이하게 된다.


 
▲ 시인의 초상화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부인 서영옥(마리아 테레사) 여사.
 
 
 두 사람은 베네딕도수도원이 있는 왜관에 머물렀는데 서영옥은 그곳에서 `왜관순심의원`이란 개인병원을 열어 환자를 돌봤다. 전쟁 후엔 서울로 올라와 순천향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로 근무하며 평생을 의료생활에 투신했다.

 시인의 폐병은 고질이었다. 3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국내 의사 중엔 한쪽 폐를 도려내는 수술을 성공한 이가 없었다. 구상은 일본에 가서 폐병의 세계적 권위자 오리모도 의사의 집도로 큰 수술을 한 끝에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슬하의 2남 1녀 중 두 아들이 폐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다. 작은아들은 1987년 폐결핵으로, 큰아들은 1997년 폐렴으로 작고했으니 시인은 두 아들을 다른 병도 아닌 폐병으로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슬픔을 겪는다. 1993년에는 아내도 앞세운다. 이런 중첩된 고통 속에서 영근 구상의 시는, 한마디로 말해 위대하다.
 
 #인본주의에서 인간 구원까지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초토의 시 8, 적군 묘지 앞에서 끝부분

 자신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준 공산군 묘지 앞에 와서 목놓아 우는 시인이다. 이후 구상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 사회평론집 「민주고발」을 내는 바람에 두 번째 필화(筆禍)를 당하게 된다. 8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현실 문제에 참여할 것인가, 문학의 길로 걸



가톨릭평화신문  201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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