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덕원의 순교자들]<14>그레고르 루드비히 기게리히 수사

전기 난방 등 만능기술자이며 순명의 일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그레고르 루드비히 기게리히 수사 (Gregor Giegerich)


 
 ▲출생: 1913년 4월 29일 독일 프랑켄 그로스발슈타트
 ▲세례명: 루드비히
 ▲첫서원: 1932년 10월 20일
 ▲종신서원: 1936년 1월 19일
 ▲한국파견: 1939년 1월 6일
 ▲소임: 덕원 수도원 전기 설비, 난방 기관실, 운전기사
 ▲체포 일자 및 장소: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
 ▲선종 일자 및 장소: 1950년 10월 3/4일, 평양 인민교화소



 
▲ 1936년 가을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전봇대에 올라 전기 설비 공사를 하고 있는 기게리히(왼쪽) 수사.
 


 
▲ 1940년 성령강림대축일에 덕원 수도원을 방문한 경성대목구장 라리보 주교와 수도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셋째줄 가운데(원 안)가 그레고르 기게리히 수사다.
 


 
▲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묘지에 있는 그레고르 기게리히 수사의 묘비.
 

덕원 수도원의 만능 기술자인 그레고르 루드비히 기게리히 수사는 언제나 순명하고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온화한 성품의 수도자였다. 동료 수사들은 그에 대해 일본 파시즘과 북한 공산당의 압제에도 자신의 운명을 평온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견뎌낸 수도자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기게리히 수사는 성소 문제로 자신에게 조언을 청하는 이들에게 늘 "하느님이 부르시면 따르라"고 충고할 만큼 확고한 소명을 지닌 선교사였다.

 "저는 이곳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물론 고향과는 완전 딴판이지요. 방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이 우리 유럽인에게는 그리 편치 않아도 흥미롭기는 합니다.…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지요. 좋은 시절이 다시 올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 손안에 있으며 선교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 사업을 위해, 그리고 이 머나먼 동아시아를 위해서도 많이 희망하고 많이 기도합시다"(1941년 1월 19일자 기게리히 수사 편지 중에서).

 손재주 남달라

 그레고르 기게리히 수사는 1913년 4월 29일 독일 프랑켄 그로스발트에서 농부인 알로이스 기게리히와 베르타의 12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루드비히.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1928년 4월 열다섯 살에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전기 설비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도제 기간이 끝나기 전인 1929년 3월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입회했다. 사감인 베르흐만스 신부는 그에 대해 "품행이 바르고 노력이 두드러진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그레고르`를 수도명으로 1932년 10월 20일 첫서원, 1936년 1월 19일 종신서원을 한 기게리히 수사는 1939년 1월 6일 한국 선교사로 선발돼 덕원 수도원에 파견됐다.

 한국 파견 전에 이미 전기기사 장인 시험에 합격한 그는 뮌스터슈바르작 새 수도원 건물과 덕원ㆍ연길 수도원 관할 성당 전기 설비 공사를 맡아서 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전기 설비뿐 아니라 덕원 수도원 난방 기관실,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 운전기사 등 여러 소임을 맡아 쉴 틈 없이 바쁘게 생활했다.

 "난방기는 여름에 몇 주를 제외하곤 매일 돌아가고 있습니다. 겨울철인 지금은 기계가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제가 기계를 작동시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곧장 난방장치를 켜야 합니다. 기계가 작동하면 대개 밤 9시 30분까지 돌아갑니다. 열



가톨릭평화신문  2013-09-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1코린 13장 5절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