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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순교자들]<28> 마르쿠스 메츠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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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메츠거(Markus Metzger) 수사

 
 

  
   ▲출생: 1879년 1월 26일, 독일 모나츠하우젠 트라우빙
 ▲세례명: 시몬
 ▲한국명: 정양리(丁洋利)
 ▲첫서원: 1900년 10월 14일
 ▲종신서원: 1904년 10월 14일
 ▲한국 파견:  1911년 1월 7일
 ▲소임: 서울ㆍ덕원수도원 관리인
 ▲체포 일자 및 장소 : 1949년 5월 11일, 덕원수도원
 ▲선종 일자 및 장소 : 1949년 8월 3일, 옥사덕 수용소
 
 



▲ 수도원 복도에서 명상에 빠져 있는 마르쿠스 메츠거 수사. 수도원 관리소임을 맡은 그는 평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 덕원수도원 수도자들과 함께 소풍을 나왔다가 한국인 소년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메츠거 수사(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메츠거 수사는 나이 일흔에 옥사덕 수용소 건설 선발대로 뽑혀 혹사를 당하다 순교했다. 사진은 수용생활을 했다가 생환한 수도자가 그린 옥사덕 수용소 스케치.
 
 
성 베네딕도회 서울ㆍ덕원수도원 관리인이었던 마르쿠스 메츠거 수사는 평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서울과 덕원 수도원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수도자였던 그는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조용한 수도승이었다.

 메츠거 수사는 1879년 1월 26일 독일 모나츠하우젠 트라우빙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디센 상트 게오르겐의 하녀 데레사 메츠거였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트라우빙 성당에서 빌헬름 신부에게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받은 그는 전 과목 `매우 우수` 평점을 받을 만큼 머리 좋고 재능 뛰어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돕기 위해 하인으로 고용돼 생활하다 1897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입회했다. 1900년 10월 14일 `마르쿠스`라는 수도명으로 첫서원을 했고, 1903년 동아프리카 선교사로 파견됐다. 1904년 10월 14일 종신서원을 한 그는 1905년 동아프리카 선교지에 내전이 일어나 많은 선교사가 순교하고 부상당하자 동료 수도자와 함께 독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1911년 1월 7일 한국 선교사로 선발돼 노르베르토 베버 총아빠스와 동행, 같은 해 2월 22일 서울 백동수도원에 도착했다.

 서울 수도원 생활부터 순교 때까지 그의 소임은 `관리인`이었다. 작업장을 깨끗이 정돈하고, 난로와 석유 램프, 굴뚝 등을 손질하고, 온갖 곳을 쓸고 닦고 씻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또 타지에서 온 동료나 손님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세탁물을 빨래하고 계절 옷을 깨끗이 정돈 손질했다. 그는 한국 여인들이 옷감을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방망이로 빨랫감을 두들겨 대는 것을 보고 중요한 세탁물을 삼복더위건, 한 겨울이건 직접 빨아 관리할 만큼 꼼꼼했다. 그래서 동료 수도자들은 환갑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자신의 소임을 맡아 하는 그에게 "걸레를 빨 때마다 손과 팔에 냉수욕한 게 건강 비결"이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의 꼼꼼함과 빈틈없는 일 처리는 1927년 9월 서울 백동수도원에서 덕원수도원으로 이사 갈 때 빛을 발했다. 그는 화물 열차 16량을 가득 채운 이삿짐의 모든 상자 내용물을 일일이 기록해 놓고 하나하나 확인하고, 1932년 초 수



가톨릭평화신문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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