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예언자 엘리야가 거짓 예언자들과 싸워 하느님 증거한 산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21. 카르멜 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하느님의 포도밭 카르멜 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즈르엘 평원.

우리말 `포도밭`을 뜻하는 히브리말 `케렘`에서 유래한 카르멜(하느님의 포도밭)산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카이사리아에서 하이파 만까지 이스라엘 북서부로 길게 뻗어 있다. 해발 546m 최고봉에서 동쪽으로 이즈르엘 평원이, 서남쪽으로 샤론 평야가 펼쳐져 있다.

 
▲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를 칼로 치는 모습을 재현한 석상.
 
팔레스타인 지역 대부분 산은 `민둥산`인데 카르멜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다. 또 남서면의 가파른 언덕 곳곳에는 동굴들이 많아 고대 구약시대 때부터 주거지와 은신처로 이용됐다(아모 9,3). 이 동굴들에선 기원전 4000년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팔레스타인 지역민들 집터와 무덤들이 발굴됐다.
 
 카르멜산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이 산에 산당을 짓고 제단을 세웠다. 기원전 1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와 람세스 2세, 람세스 3세는 문헌에 `거룩한 산`이라 기록했다.
 
▲ 거짓 예언자들이 바알에게 제물을 태울 불을 내려달라 기도하지만 뜻대로 되지않아 낙담하고 있다. 카르멜 산 수도원 벽에 새겨진 부조.
 
 구약성경도 카르멜 산이 우상숭배의 중심지였고,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예언자 400명과 대결해 참 하느님을 증명한 장소라고 기록하고 있다(1열왕 18, 20-40).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예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됐다. 불안정한 정국을 겪던 북이스라엘은 제6대 오므리 왕 때에 가서 겨우 왕정을 확립했다. 기원전 860년 오므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아합은 지중해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 결혼해 국력을 강화했다. 이제벨 공주가 시집올 때 시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들여와 북이스라엘에 퍼뜨렸다.
 
 사실 바알 신앙은 모세 시대 이전부터 가나안 땅에 퍼져 있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의 아들도 `바알의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스바알`(1역대 8,33)이었다. 이스라엘 탈출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이스라엘 민족이 `폭풍과 비의 신`인 바알과 `풍요의 여신` 아세라의 우상에 현혹된 것은 아마도 정착민으로 유목과 함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풍요를 염원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 카르멜 산 수도원 제단. 엘리야 예언자가 12개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을 형상했다.
 
해발 482m 지점 카르멜산 등성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무흐라카`(불의 제단)를 쌓아 바알의 거짓 예언자와 대결했다는 장소가 있다(1열왕 18, 20-40). 유다인들은 12개 돌로 쌓은 이 `엘리야 제단`에 순례를 왔고, 초대교회 신자들도 이 산을 경건히 여겨 570년부터는 은수자들이 들어와 수도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르멜 수도원의 기원이 됐다. 무슬림들도 이곳을 찾아와 엘리야 예언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기도 촛불을 밝혔으며, 십자군들도 엘리야 제단이 있던 터에 성당을 세웠다. 이 성당은 오스만 튀르크 군에 의해 폐허가 됐으나 19세기 초반 남자 가르멜 수도원이 들어와 지금까지 성지를 보존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4-04-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

갈라 6장 9절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