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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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2)-길에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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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돈 고개 정상에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옛날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디서나 히죽히죽 잘 웃는 넉살 좋은 성격 덕에 사람들과 쉬이 친해졌다. 형편 없는 영어 실력으로 농담도 주고받고, 때로는 식사도 함께 준비해 먹으면서 우정을 나눴다.

 보름 동안 쌀밥 구경 못한 딱한 사정을 하느님께서 아신 것일까? 프랑스에서 온 실비아 아줌마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밥을 해먹게 됐다. 쌀과 해물볶음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왔는데, 모두들 밥은 내가 잘 할 것 같다며 맡겨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돌을 삼킬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고 쌀을 씻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온 자존심을 걸고 정성껏 냄비밥을 지어냈다. 즐거운 마음과 좋은 기운 덕에 밥은 꼬들꼬들 잘 됐다.

#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
 함께 시장보고 밥짓고, 빨래하고, 잠자고….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도움을 주면, 상대도 그걸 느낀다.

 나바레떼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관리인 아저씨는 손수 크레페를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피곤에 지친 순례자들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소박한 베풂으로 숙소 분위기를 환하게 밝히는 아저씨를 보면서 일터를 기쁨의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각자 개인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순례 여정에서 자주 마주치는 프랑스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분은 프랑스어 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상형문자 대화를 나눴다. 그 광경을 보고 베니스에서 온 아저씨가 끼어 들어 짧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통역을 해줬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이 길은 언어가 장벽이 아님을, 그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만나는 법을 새겨주었다.

 
▲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와인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는 순례의 벗들.
순례를 하는 동기와 목적은 얼굴 생김새마냥 제각각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주변을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길은 몰라도 큰 도시나 건물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 노란 화살표를 놓치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팜플로나라는 큰 도시를 지날 때였다. 재밌는 거리 풍경에 취해 걷다 그만 화살표를 놓치고 말았다. 당황해서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길가 끝에서 노란 화살표가 "이쪽이야"라고 손짓하는듯 하늘거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화살표가 아니라 노란 꽃이었다. 그 황당함이란…. 그 후로 길가에 핀 노란 꽃들만 보면 황당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난다.

 # 아저씨, 정말 미안해요
 지인들이나 고마운 분들께 엽서 띄우는 걸 좋아하는 터라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우체국을 먼저 찾는다. 순례 여정에서 처음 엽서를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체국같아 보이는 건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체국`이란 단어 하나 외워오지 못한 게으름을 자책하며 동네를 이리저리 헤맸다.

 거리에서 한 아저씨에게 영어로 우체국을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꼬레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선글라스를 낀 인상이 그렇잖아도 무서웠는데, "한국인이냐?"고 반문하는 말투가 예사롭지 않아 무조건 줄행랑을 쳤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쫓아오면서 "꼬레오@#$^&"를 외쳤다. 달리기라면 나도 자신있지만 무게가 8㎏나 되는 배낭을 메고 도망가는 게 쉽지 않았다. 무조건 뛰었다.

 골목에서 아저씨가 안 보이는 듯 싶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아주머니 한 분께 우체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친히 우체국까지 데려다주신 그 분 덕에 알게된 사실은 우체국이 스페인어로 `꼬레오스(Correos)`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그 친절한 아저씨를 파렴치한으로 오해했다니. 그 후로 `꼬레오스`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우체국을 이용할 때마다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내 자신이 만화 주인공같이 여겨지는 우스운 일들, 어처구니 없는 일들, 그럼에도 계속되는 매일의 걸음, 나는 안다. 이 길은 내가 가는 길이 아니고, 나를 인도해주시는 분의 손길에 내가 맡겨져 가는 길임을….

 숙소 사정에 따라 하루에 많게는 30㎞에서 적게는 5㎞를 걷는다. 발가락은 까져 피가 났을지언정, 하루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길 위에 오를 생각을 하면 `오늘은 그냥 근처 다른 숙소에서 쉴까?`하는 달콤한 유혹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어제 걸은 걸음이 오늘의 걸음을 대신할 수 없고, 내일 걸을 걸음을 오늘 기약할 수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걸음이 가르쳐 주는 성실과 인내를 새긴다.

 하찮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100㎞, 500㎞, 800㎞를 만들어 순례를 완성한다고 생각하면 이 순간이, 그리고 삶의 한 걸음이 더없이 소중해 진다.

 길 위에서 나 자신의 긍정성과 잠재력을 보게 된다. 아무리 상황이 절



가톨릭평화신문  200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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