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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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4)-''야고보의 길''에서 ''나의 산티아고''를 찾아…

무거운 짐, 긴 길 걷게 해준 힘이었음을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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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갈 길보다 걸어온 길이 더 길다. 이제 200㎞ 남짓 남았다. 많이도 왔다.
 초반에 발가락에서 피가 나 고생한 것 외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걸어올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에 기도를 보태주었다. 마음으로 나와 함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 몰리나세카 인근 해발 1504m 고지에 우뚝 서 있는 철십자가와 돌무더기.
순례자들은 이곳에 근심과 마음의 상처를 내려놓듯 돌을 하나씩 던져놓고 떠난다.
 

# 죽을 만큼 온 힘을 다해…
 길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때론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느 순례자들과 다르게 걷는 그 사람들은 잘못 가는 게 아니었다. 길이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 자신을 진솔하게 만나는 여정 안에 있다는 것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이에게나 거꾸로 걷는 이에게나 똑같다. 그동안 내가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종종 비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화살표를 따라 걷는 것이었으리라.

 누군가 내 별명을 `연연`이라고 지어줬다. 정(情)에 연연하고, 지나간 시간에 연연한다고 붙여준 별명이었는데,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문득 그 별명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왜 이 순례길에서는 지나온 마을과 지나온 길, 혹은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과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일까? 지나온 마을 중에 한 폭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마을도 많았고, 추억을 새겨놓은 소중한 길도 많았는데, 그리고 천사 같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하루하루를 온 힘을 다해, 죽을 만큼 온 힘을 다해 걸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락된 시간이 오늘 하루뿐이라는 `하루살이 정신`으로 걸었다. 아프다고 성화를 부리는 다리를 살살 달래가며 매일 많게는 43㎞, 적게는 5㎞라도 걸었다. 내가 머무는 시간과 자리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죽도록, 죽을만큼 성심껏 대한다면 `연연`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풀을 뜯으러 가는 소떼는 길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쓰레기를 줍는 아름다운 손
  
라바날(Rabanal)을 향해 걷던 날, 검은 얼굴 더 검어질까 걱정돼 열심히 발라오던 로션과 썬크림을 배낭에서 꺼내기 귀찮아 맨 얼굴로 그냥 출발했다. 3시간 남짓 걷고나서 콜라 한 잔 뽑아 그늘에서 양말까지 말리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검은 점들이 허공에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앉은 자리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벌집이 있는 듯 했다. 수백 마리 벌들이 어느새 모여들어 "윙윙" "붕붕"거리는데 무서워서 손이 다 떨렸다. 더위를 순식간에 싹 날려준 것은 콜라가 아니라 벌떼였다. 풀썩 주저 앉고만 싶어하는 엉덩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양말도 신지 못한 채 벌들이 들을세라 살금살금 뛰어서 도망을 쳤다. 아침에 로션을 바르지 않은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아직 까미노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이 여정은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순례자 니키를 만났다. 그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이다. 그녀는 한 손에 쓰레기 봉투를, 다른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다른 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걸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던지는 나에게 부끄러운 듯 미소를 던지며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버리는 손이 있지만, 조용히 줍는 손이 있기에 산티아고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

 하루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온종일 어깨를 짓눌러온 배낭을 침대에 휙 내던졌다. 속이 다 시원했다. 저 무거운 배낭만 없으면 더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배낭이 미워서 던져본 것이다.

 그런 내게 한 순례자가 말해주었다. 어느 날, 짐이 없으면 더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짐을 택시 서비스로 보냈는데, 등이 허전하니까 오랜 시간 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던졌던 배낭을 다시 끌어다 추스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십자가가 무겁다고 얼마나 많이 벗어 던지려고 했던가? 그 무거움이 곧 기나긴 길을 걷게해 준 어떤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그동안 배낭 무게가 8㎏ 남짓 되는 줄 알았다. 숙소에서 내 배낭을 들어본 어느 아저씨가 "10㎏은 족히 될 것 같다"고 하길래 저울에 달아보았다. 10.5㎏! 맙소사! 여지껏 8㎏인 줄 알고 600㎞를 메고 왔다니.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옆 사람들은 "그 작은 체구에 어떻게 이걸 메고 왔냐?"며 놀랐다. 어떻게 지고 왔는지 나도 놀랍다. 난 체구가 작고 체중도 얼마 나가지 않아 배낭 무게 1~2㎏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한국에 소식을 띄우기 위해 챙겨온 넷북과 전원 연결선 때문에 무게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작은 체구의 한국 아가씨는 넷북까지 지고 걷는다"는 입소문이 한 동안 길 위에 퍼졌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지고 온 사정을 누가 알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숙소 빨래 건조기에 젖은 옷을 넣고 살포시 잠이 들었다. 놀라서 깼을 때는 이미 어둑한 시간이었다. 달려가 빨래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했다. 옆을 두리번거리니 내 빨래는 한쪽 켠에 가지런히 정말 예쁘게 개켜져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졌다. 100명 가량 머무는 숙소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의 빨래를 누가 그토록 예쁘게 개켜놓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천사가….


가톨릭평화신문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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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린 13장 1절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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