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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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⑨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하)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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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쇄신 추구… 분열 막으려 노력
무릎 꿇고 두 팔을 벌린 성녀
오상을 받고도 죽기까지 숨겨
 

 
▲ 작품해설:<오상을 받는 성녀 카타리나>, 208×156cm, 1513-15, 시에나 국립 미술관.
 
“내가 너를 사랑하였듯이, 너도 타인을 사랑하라.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사랑했듯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타인을 사랑하라. 너는 나에게 보답하려 하지 말고 오직 타인에게 이 사랑을 주어라.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너의 정신적, 육체적 이익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나의 영광과 이름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저서 ‘대화’편에 나오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가 카타리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보통 사람과 성녀의 차이점은 이 단순한 말씀을 실천에 옮기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언제 타인을 조건없이 사랑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하기 일쑤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에게만 줄 뿐이다. 그런데 성녀 카타리나는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

성녀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그녀는 또한 교회의 부패와 잘못을 질타하는 냉정한 비판자이기도 했다.

“교회는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보잘 것 없는 어린양의 거울이어야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어야 하건만,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기는커녕 세상의 사치와 야망, 그리고 허망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속인들보다 천배는 더 나쁜 것입니다.”

일개 수녀가 교황님께 이처럼 직설적으로 교회를 질타하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1374년 카타리나 성녀는 당시에 치열했던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피사를 방문했으며 거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과 똑 같은 오상(五傷)을 받았다고 하는데,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상처를 숨기며 지내다가 죽음이 가까이 와서야 타인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당시 교회는 교황파와 대립 교황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는데 카타리나는 늘 정통 교황파에 서서 교황의 정통성 확보에 이바지했고, 1309년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진 후 친히 그곳을 찾아가 교황님을 알현하여 1376년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돌아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교회가 한창 분열의 혼란을 겪고 있던 1380년 경 카타리나는 먹고 마시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며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해 2월 29일 33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카타리나가 글을 배운 것은 선종 3년 전에 불과하며, 그녀의 저서 ‘대화’와 40여 편의 서한은 그녀의 정신적 동지였던 성 라이몬디의 구술(口述)에 의한 것이다.

‘오상을 받는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와 동향 출신인 시에나의 화가 베카푸미가 그린 것으로 흰 색의 도미니크회 수도복을 입은 성녀 카타리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으로부터 오상을 받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실내는 정확한 원근법에 의해 그려졌으며 아치 밖으로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이어지고 있고, 아치 바로 위에는 성 모자(母子)가 구름 사이에 떠 있다.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왼쪽에 흰 수도복을 입고 책을 들고 있는 이는 성 베네딕토이고 오른쪽에서 붉은 옷을 입고 책을 펼쳐 읽고 있는 이는 성 제롬이다. 성 제롬의 발치에 사자를 그린 것은 성인이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후 사자가 평생 성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성 제롬의 붉은 옷에서 알 수 있듯이 베카푸미는 강렬하며 비현실적인 색채를 구사할 줄 알았던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작품의 주인공도, 그림을 그린 화가도 둘 다 시에나 사람이고, 작품이 소장된 곳도 시에나의 미술관이니 시에나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도시인지 상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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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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