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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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⑮ 수산나(하)

''세속적이면서 대담하게''. 구약에 나오는 정숙한 여인 수산나와 음해하려는 두 노인의 이야기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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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틴토레토 <수산나와 늙은이들> 146*193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여성의 육체, 특히 나체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여성이 나체로 그려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주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여신을 비롯하여 사랑에 빠진 신화의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틴토레토의 이 그림은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어엿한 성경에 등장하는 수산나라는 여인이고 보면 베네치아 화가들의 세속성과 대담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알몸의 수산나는 담쟁이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한 쪽 발을 못에 담근 채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주변에 향수병, 빗, 목걸이, 머리핀, 귀고리 등의 장신구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막 목욕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거나, 아니면 방금 목욕을 마친 듯하다. 햇살은 그녀의 몸을 환하게 비추어서 뽀얀 우윳빛 살갗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 그림 앞쪽에서 수산나를 훔쳐보고 있는 흰 수염에 흰 머리를 한 대머리 노인을 발견했을 것이다. 앗! 그런데 담쟁이 저쪽 편에도 또 한 명의 노인이 보인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구약성경 다니엘 제13장에 따르면 바빌론에 요야킴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수산나는 그의 아내다. 요야킴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고 그의 집은 늘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 수산나가 방문객이 떠나자 하녀 둘을 데리고 정원에서 목욕을 하려 하는데 미리 숨어서 그녀를 훔쳐보던 두 늙은이가 갑자기 뛰쳐나와서는 범하려 했다.

그들은 수산나에게 몸을 허락지 않으면 젊은 놈과 놀아났다고 사람들에게 폭로할 것이라 협박했다. 하지만 바른 여인이었던 수산나는 힘껏 소리를 질렀고, 하인들이 뛰어나왔다. 다음날 노인들은 수산나가 젊은이와 놀아났다고 거짓증언을 했다. 사람들은 노인들의 말만 듣고 수산나를 사형에 처하기로 했으나 수산나는 하느님께 큰 소리로 기도했고 기도를 들은 하느님은 예언자 다니엘을 통해 수산나의 결백을 증명해주었다. 수산나의 결백을 믿은 다니엘은 두 늙은이에게 각자 어떤 나무 밑에서 그녀가 젊은이와 놀아났는지를 묻자 한 늙은이는 유향나무 아래라고 대답했고, 다른 이는 떡갈나무 아래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거짓 증언은 들통이 났고, 수산나 대신 두 노인은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화가는 이 이야기 중에서 두 노인이 음탕한 눈으로 수산나의 나체를 훔쳐보는 장면을 그렸다. 신화 속의 비너스 여신을 나체로 그리는 것이 부족했던지 틴토레토는 정절을 지켰던 성스러운 여인 수산나조차도 이렇게 나체로 그려놓은 것이다.

이 그림은 틴토레토의 대표작에 속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스턴에 소재한 파인 아트 갤러리의 특별전에서 직접 보면서 필자는 그림의 아름다움에 취하면서도 무언가 어색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수산나의 자연스럽지 못한 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른쪽 다리 부분의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수산나의 아름다운 얼굴, 섬세한 머리 스타일이 완벽하게 그려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지난 호에서 티치아노가 그린 교황 파울 3세 초상화에서 손이 얼굴 이상으로 강인하고 섬세하게 그려졌음을 지적한 바 있다. 손은 잘 그리자면 공이 많이 들지만, 그렇다고 대충 그리면 금세 표시가 나는 화가로서는 피하고 싶은 부위일지 모른다. 분명 틴토레토는 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서 주인공의 손을 덜 숙련된 조수에게 맡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는 원화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냥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500년이나 지난 지금 틴토레토의 옥에 티가 결국 탄로가 난 것 같아 그림을 감상하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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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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