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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16. 성모승천

다른 두 사건을 한 그림에 묘사. 아래엔 빈 무덤 보고 놀라는 제자들. 위는 승천하는 성모님 ‘함께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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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안니발레 카라치, <성모승천> 1592 160*177cm 볼로냐, 국립 미술관
 

1583년 로마에 살던 반디니라는 사람이 볼로냐의 팔레오티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전해진다. 반디니 역시 후에 추기경이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고위 성직자였다. 편지에 따르면 반디니는 자신의 경당에 <성모승천>을 한 점 걸기 위해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했는데 문제는 그림 속에 성모님의 빈 무덤을 그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성모승천 당시에는 현장에 있지 않았고, 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서거한지 삼일 후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일을 한 장면에 그려도 되는가 하는 문제에 부닥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팔레오티 추기경은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전통에 따르라고 충고하면서 성모님의 얼굴을 사망 시점인 60대로 그릴 것을 조언했다. 또한 제자들은 12명 대신 11명으로 그릴 것을 권유했는데 성 야고보가 성모님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성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때로는 이렇게 등장인물의 숫자까지도 화가 혹은 주문자, 학자들에 의해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되곤 했다.

반디니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린 사람은 ‘풀조네’라는 화가였고, 그림이 제작된 시기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1500년 동안 교황을 중심으로 단일 체제를 유지해왔던 교회가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막 분리되기 시작한 대단히 예민한 시기였다. 당시 막 탄생한 개신교는 아예 교회 안에서 그림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성상파괴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오늘날까지도 개신교에서는 성화를 활용하거나 장식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18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교회 안에서 성화를 모시고 이를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공식 천명했다. 오늘날 천주교회에 성모님이나 예수님 상을 비롯하여 많은 성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전통에 따른 것이다. 반디니가 그림 한 점을 두고 그토록 고심한 이유는 당시 가톨릭이 혹시라도 개신교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교리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안니발레 카라치가 그린 <성모승천>은 화가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두 층으로 나누어서 아래쪽에는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을 그렸다. 제자들의 숫자를 세어 본 독자들은 12명이 아닌 11명으로 그린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대부분 대머리의 할아버지로 그려졌다. 화가는 또한 승천하는 성모님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있는 서로 다른 순간에 벌어진 두 사건을 한 장면 안에 교묘히 조합시키고 있는데 그 비결은 제자들의 일부가 승천하는 성모님을 경이로운 몸짓으로 바라보게 한 데 있다. 물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위의 편지 내용에서 밝혔듯이 맞지 않은 상황이지만 회화적 측면에서 보면 멋진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된 지 몇 년 후 안니발레는 또 한 점의 〈성모승천〉을 제작했는데 그 그림에서는 아래쪽 제자들 대부분이 빈 무덤을 바라보고 성모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는 성모님을 바라보도록 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가톨릭은 더 이상 개신교와 사사로운 교리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고, 미술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대담해졌으며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이다. 이를 표현한 미술이 바로 바로크 양식이고 이 그림을 그린 카라치는 바로크 미술이라는 새 양식을 연 선구자였다.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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