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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22. 마리아,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전통에 대한 도전·추상미 돋보여. 왼쪽 마리아 오른쪽 엘리사벳… 뒤 두 여인도 마리아와 엘리사벳. 한 장면에 동일 인물 두 번 등장… 사실주의 벗어난 새로운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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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폰토르모, 〈방문〉, 패널에 유채, 202×156 cm, 카르미냐노, 성 미카엘 수도원.
 

마리아는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한다. 성화 중에는 ‘방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후자는 세례자 요한을 임신한 상태이다.

루카복음에 의하면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말을 전하자 엘리사벳의 배 안에서 아기가 뛰어 놀았다고 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중의 아기가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가 늘 드리고 있는 성모송이 바로 여기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서로 사촌 간이라고 하니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6촌이 되는 셈이다. 이후 수많은 성 모자상 그림 속에 아기 세례자 요한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두 아기가 몇 개월 사이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어린 시절도 함께 보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화가들이 두 아기를 함께 그렸기 때문이다.

‘방문’을 그린 그림 중에서 폰토르모(Pontormo)의 작품은 퍽 인상적이다. 거대하게 클로즈업한 네 사람이 보이는데 왼편의 젊은 여인이 마리아이고 오른편의 늙은 여인은 엘리사벳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얼싸안고 있다. 그런데 이들 뒤에 또 다른 두 여인이 정면을 보고 서 있는데 사실 자세히 보면 앞의 두 여인을 정면에서 그린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두 여인이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장면에서 동일 인물들을 두 번씩 등장시킨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법으로 이는 사실주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발상이다. 그러고 보니 두 여인의 표정은 뭔가 기이하다. 이들의 비례 또한 당시 유행했던 8등신 미인이 아니라 9등신이나 10등신쯤 되어 버릴 정도로 길게 늘여져 있다. 또한 여인들의 의상은 마치 형광색을 칠한 듯 작열하는 빛을 내뿜고 있으며 색채가 주는 느낌 역시 완전 추상적이다. 서로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붉은색과 초록색은 강한 빛의 반사로 인해 주홍과 분홍 그리고 연둣빛을 띠고 있다.

배경에 비해 인체는 지나치게 거대하여 마치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엄연히 1528년경에 제작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다. 이 그림의 작가인 폰토르모는 여기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이룩한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전통적 회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은 이렇게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며,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들 중에도 이처럼 전통을 뛰어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정녕 위대한 창조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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