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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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32. 세례자 요한 3

숨은 스푸마토 기법의 비밀을 찾아보자,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림 중앙은 헤로데 왕의 생일 연회, 왼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접시에 받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어머니 헤로디아데에 바치는 장면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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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필립포 립피,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 1452-64, 프레스코 벽화, 프라도 대성당.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이 사실이 화가들을 자극했는지 명화 중에는 베어진 목을 들고 있거나 쟁반에 담은 잔혹한 그림들이 종종 있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할 무렵 유다의 통치자는 헤로데였다. 이 사람은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살고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은 왕에게 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차례 충고했고 왕은 눈에 가시같은 요한을 괘씸하게 여겨 감옥에 가두었다. 때 마침 생일 잔칫 날 헤로데는 아내의 딸인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청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 멋지게 춤을 추어 양부의 기분을 좋게 만든 살로메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청했다.

필립포 립피(Filippo Lippi, 1406-69)의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은 1452년부터 64년 사이 이탈리아 프라토의 대성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다.

이 그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중앙은 헤로데 왕의 생일 연회 장면으로 흔히 팜므 파탈로 표현되는 살로메가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헤로데 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두 살 미만의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모두 살해하도록 명령한 예수 탄생 시기의 헤로데 왕과 동명이인이자 그의 아들이다.

화면 왼쪽은 요한의 잘린 목을 살로메가 접시에 받고 있는데 처참한 모습에 그녀조차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 화면 오른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어머니 헤로디아데에게 바치고 있는 내용이다.

내용상으로는 대단히 잔혹해야 하겠지만 잔칫상과 여인의 춤, 그리고 잘린 머리가 동시에 보여져서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뭔지 모르게 복합적이다. 감상자가 아직 요한의 잘린 머리를 보지 못했다면 잔치 장면만 그린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경쾌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물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뭔가 불안하고 묘한 표정들이다. 화가는 이들 인물들을 세속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는 특유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화가로서의 필립포 립피의 능력과 실험정신은 오른쪽 선반에 투명한 병들을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 유리병들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관심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또한 살로메 뒤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그림에서 제외된 듯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이들은 악사들로서 화가의 독특한 발상에 감탄하게 만든다. 다빈치가 이런 장면을 보았다면 무릎을 치며 감탄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다빈치 예술의 극치이자 시각 현상의 결정판인 스푸마토(sfumato) 기법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과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대리석 바닥재는 립피가 원근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증명하며, 배경에 보이는 두 창문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배경과 일맥상통한다. 르네상스의 걸작 ‘최후의 만찬’도 결국 선배 작가들의 이 같은 노하우를 연구 발전시킨 결과였던 것이다.

필립포 립피는 카르미네 수도회 수도사였기 때문에 수사 필립포 립피라고 불린다. 그는 보티첼리의 스승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유려하고 우아한 선과 원근법에 의한 수학적 공간 표현에서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이 작품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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