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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35. 성녀 루치아

재판관과 담판 벌이는 성녀 루치아, 가난한 이들에 재산 나눠준 후 약혼자에 고발 당해, 손가락으로 성령 가리키며 열띤 토론 중인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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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로렌초 로토, 〈재판관과 논쟁하는 성녀 루치아〉, 1532, 243×237㎝, 캔버스에 유채, 제시, 시립미술관.
 

이탈리아 사람들은 눈이 아프거나 침침하면 ‘산타 루치아!’를 연발한다. 성녀 루치아가 눈을 보호하는 성녀이기 때문이며 성녀의 상징물이 두 눈이 된 것은 루치아라는 이름이 빛이라는 뜻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배웠던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떠올라…”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칸소네가 말해주듯 그녀는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친근한 성녀이다.

루치아에 관한 기록 역시 야코포 다 바라지네가 13세기 말에 완성한 ‘황금전설’에서 알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루치아는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났다. 루치아의 어머니는 4년 동안이나 출혈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모녀는 어느 날 역시 시칠리아 섬 출신의 성녀인 아가타의 명성을 듣고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서 미사를 드린다.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사제가 루치아의 어머니와 같은 병을 앓던 여인이 병을 나았다는 성경 구절을 읽자 루치아는 어머니의 병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성녀 아가타의 무덤을 만지면 어머니도 병이 낫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는 무덤을 만지며 기도했다. 그 때 믿음이 두터웠던 루치아에게 세상을 뜬 성녀 아가타가 나타났다.

“나의 자매 루치아여, 주님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네 어머니의 병이 낫게 될 것이다. 내 순교로 그리스도가 내 고향 카타니아를 복되게 했듯이 너의 순교는 네 고향 시라쿠사를 복되게 할 것이다”라며 성녀의 순교를 예언했다.

루치아는 그동안 남몰래 그리스도께 몸과 마음을 봉헌하고자 결심했었는데 이제 어머니께 자신의 뜻을 말씀드리고 혼인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결혼 지참금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자고 청하였다. 루치아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고 난 후에는 재산을 원하는 데에 써도 좋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루치아는 “우리의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주님을 기쁘게 하시려거든 우리가 그것들을 필요로 할 때 베푸십시오. 살아계실 때 재물을 봉헌한다면 어머니는 영원히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리하여 모녀는 재산을 과부, 고아, 방랑자, 가난한 자, 수도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편 루치아의 약혼자는 자신의 소유가 될 재산이 모두 사라지자 분개하여 재판관 파스카시오에게 루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이며 로마 제국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죄명으로 고발했다.

성녀 루치아의 일화를 그린 로렌초 로토의 이 제단화는 성녀 루치아 수녀회에서 1523년 주문하여 1532년 완성한 것으로 루치아가 재판관과 담판을 벌이는 내용이다. 손가락으로 성령을 가리키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루치아를 한 남자가 사력을 다해 끌어내려 하고 있으나 천장 쪽에 있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그녀를 꿈쩍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끌어낼 수 없게 되자 나중에는 소떼까지 동원하여 그녀를 끌어냈다는 일화의 한 부분이다.

로토는 르네상스 시대의 아치가 있는 실내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데 화면 앞쪽의 가파른 계단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아치는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나 왠지 모르게 기이한 느낌을 준다.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노랑, 빨강, 파랑, 분홍, 오렌지 등 밝고 화려한 색이어서 그가 색채를 중시한 베네치아의 화가임을 말해주고 있다. 화가는 4세기에 살았던 성녀 루치아와 주변 인물들을 자신과 동시대인들인 16세기 인물들로 둔갑시켰으며 건축물을 비롯한 배경도 당시의 것을 재현하고 있어서 이 그림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성녀 루치아가 바로 눈앞에서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고종희 (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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