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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49) 김종교 프란치스코

약방에서(제83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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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 출신으로 의원인 김종교는 신유박해 때 체포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했다.
그림 탁희성 화백
 
 김종교(프란치스코, 1754~1801)는 한양 중인 집안 출신 의원이었다. 그는 가난했지만 학문에 대한 취미가 남달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인 이벽(요한)이 그를 매우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놀라운 사람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에 김범우(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김종교는 처음에는 드러나게 활동하지 않다가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이듬해 초 최인길(마티아) 집에서 주 신부를 만난 뒤 `프란치스코` 세례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해 여름에 일어난 을묘박해로 체포됐을 때 마음이 약해져 석방됐다.
 집으로 돌아온 김종교는 즉시 신앙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동료들과 신앙 공동체를 이뤄 교리를 공부하는 한편,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썼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서 체포된 김종교는 형조로 이송된 후 갖가지 혹형에도 굳건하게 신앙을 고백했고,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1801년 10월 4일(음력 8월 27일) 홍필주(필립보)와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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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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