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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71) 최봉한 프란치스코 장에 맞아 (제128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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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우두머리로 지목된 최봉한은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옥중에서 순교했다.  그림 탁희성 화백
 

 최봉한(프란치스코, ?~1815)은 충청도 홍주 다래골(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친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공주 무성산으로 옮겨가 살던 중 주문모 신부 입국 소식을 듣고 모친과 누이와 함께 상경했다.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집에 살면서 황사영(알렉시오) 최필공(토마스) 등과 가깝게 지냈다. 모친 사망 후 시골로 내려간 그는 친척들 권유로 혼인했다. 1815~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서석봉(안드레아)과 구성열(바르바라) 부부가 그의 장인과 장모다.

 그후 최봉한은 가족들을 데리고 장인 부부와 함께 경상도 청송의 노래산(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을 찾아가 그곳 교우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중 1815년 부활 대축일에 밀고자를 앞세우고 노래산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다 다시 대구로 이송됐다.

 최봉한은 대구에서 `천주교 우두머리`로 지목돼 더욱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며, 계속되는 형벌을 이겨내지 못하고 옥중에서 순교했다. 1815년 5월쯤(음력)이었고, 그의 나이 30살이 갓 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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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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