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석봉을 비롯한 교우들이 청송 노래산에서 포졸들에게 붙잡혀 경주로 압송되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
서석봉(안드레아, ? ~1815)은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구성열(바르바라)의 남편이며, 1815년 대구에서 옥사로 순교한 최봉한(프란치스코)의 장인이다. 훗날 신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손골(현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동천리) 박씨(朴氏)의 외조부`라고 전해져 왔다.
서석봉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과부 구성열과 혼인한 후 사위 최봉한 부부와 함께 교우들이 모여 사는 경상도 청송 노래산(현 경북 창송군 안덕면 노래2동)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던 중 1815년 부활 대축일에 밀고자를 앞세우고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다.
경주에서 문초를 받은 후 아내와 사위 등과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서석봉은 대구에서도 여러차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참아내며 신앙을 지켰다.
서석봉은 1815년 11월 18일(음력 10월 18일)에 동료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벌로 쇠약해져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옥사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