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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75) 구성열(바르바라)

기적의 흑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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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과 교우들이 1817년 3월 형장 인근에 매장된 구성열 시신을 몰래 수습하려 했을 때 기적처럼 검은 구름이 일어 이들을 가려줬다고 한다.
그림 탁희성 화백
 
 구성열(바르바라, ?~1816)은 충청도 홍주 한내장벌(현 중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출신이다. 본래 성격이 온화하고 참을성이 있으며, 덕행이 남달라 사람들 이목을 끌었다. 신유박해(1801) 이전에 입교한 구성열은 첫 남편을 잃고 서석봉(안드레아)에게 개가했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서 과부`라고 불렀다.
 이후 이들 부부는 사위 최봉한(프란치스코) 부부와 함께 경상도 청송 노래산(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을 찾아가 그곳 교우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중 1815년 부활 대축일에 밀고자를 앞세우고 노래산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다. 체포될 당시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용감하게 이겨낸 구성열은 경주로 압송되자마자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면서 차츰 마음이 약해져 한때 배교할 마음까지 생겼지만 사위 최봉한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신앙을 다잡고 형벌을 꿋꿋이 참아냈다.
 얼마 후 구성열은 남편과 사위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대구로 압송돼 모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17개월이 넘게 옥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동안 남편과 사위는 형벌로 옥사하고 말았다.
 마침내 구성열도 사형판결을 받고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대구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0살 가량이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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