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왼쪽 한 건물 앞에서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줄을 선 것 같기고 하고, 되는 대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대된 그림(아래)을 보면 한 남자가 동전 같은 것을 받고 있고, 그 옆에 있는 남자는 장부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돈을 내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의 담 위쪽에는 마치 간판처럼 둥근 바퀴 같은 것이 매달려 있다.
화면 앞 쪽에서는 한 남자가 돼지를 잡고 있고, 대형 솥과 땔감이 보인다. 닭 세 마리가 부리를 땅에 박고 모이를 쪼는가 하면, 두 대의 수레 위에 맥주 통으로 보이는 대형 드럼통이 실려 있다. 바로 이 수레 뒤에 한 남자가 나귀에 여인을 태우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을 향하고 있다. 여인은 푸른색 망토에 싸여 얼굴만 겨우 보일 뿐이다. 앞장 선 남자는 뒷 모습에다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는데 자세히 보니 어깨에 대형 톱을 들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석양 무렵, 마른 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 해가 반쯤 넘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은 마음이 바빠져서 종종걸음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다.
어느 북유럽 마을의 겨울 풍경과 그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그린 이 그림의 주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그림은 분명 성경의 내용을 그린 성화이다. 하지만 그림 속 주인공들은 수많은 인파에 묻혀 있을 뿐 전혀 강조되지 않았다. 성화가 탄생한 이래 그림 속 주인공이 이처럼 엑스트라 속에 묻혀버린 것은 처음이다. 브뤼겔은 북유럽의 평범한 겨울 풍경을 통해 성경의 한 장면을 그려냈다. 일상으로 들어온 성경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브뤼겔의 이 발상은 완전히 파격적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지 불과 몇십년 지나지 않아 그가 활동한 오늘날의 네델란드와 벨기에 지역에 속하는 플란더즈 지방에서는 일상을 주제로 한 풍속화라는 장르가 탄생하여 인기를 누리게 된다. 역사에 남는 작가들은 뭔가 남다른 것을 이룩하였는데 브뤼겔은 성경과 일상을, 혹은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구분짓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회화의 세계를 개척했다. 이 화가는 평범한 일상 역시 성경 속의 장면 이상으로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