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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2) 아시시 거리에서 떠올리는 파란 눈의 선교 사제

“오로지 하느님 뜻에 순명하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 모습 보여주신 우리동네 신부님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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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베르토(Norberto), 프란치스코의 귀향, 2006년, 청동상, 아시시, 이탈리아.
 

아시시(Assisi)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에 있는 산 위의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는 오래된 집들이 다정한 친구처럼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집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옛날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은 마을 아시시의 좁은 거리는 언제나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한 사람의 성인, 프란치스코(1181/1182?~1226)를 만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않고 아시시를 찾는다.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한때 낭비와 노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며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기사가 되기 위해 전투에 참가하였지만 1202년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이 보였지만 중병을 앓고, 그리스도의 환시를 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환시 중에 “내 교회를 고쳐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그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여 철저하게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삶을 시작했다.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며 주요 활동 무대였던 아시시에는 그를 기념하는 대성당이 있고, 그 안에는 ‘제2의 그리스도’로 존경받는 성인의 무덤이 있다.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 이후인 1228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이 성당의 벽에는 성인의 생애를 프레스코로 그린 성화들이 가득 장식되어 있다. 이 성화들은 순례자로 하여금 성인의 삶과 신앙을 좀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란치스코대성당 앞의 정원에는 힘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타고 돌아오는 한 병사 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바로 한때 기사가 되려고 전투에 참가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상심하여 돌아온 프란치스코이다. 이 동상 앞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듣게 될 것이다.” 그날 새벽에 프란치스코는 내적으로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에만 순명하기를 열망하였다.

고개 숙인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이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시시 거리를 걸으면서 내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향 마을의 언덕에도 작지만 아름다운 공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하느님의 집이면서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지금 같은 부활시기나 성탄시기가 되면 읍내에 사시던 본당신부님께서 방문하시어 고해성사와 라틴어 미사를 집전해 주셨다. 또한 미사 후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열어 교우들과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안겨 주셨다.

비록 우리나라 말이 서툰 파란 눈의 선교 사제셨지만 신자들을 자상하게 바라보시던 신부님의 선한 눈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신부님의 착한 마음과 선한 눈망울을 통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와 같은 가까운 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 준 것처럼 우리 동네의 본당 신부님 역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사랑이신 하느님 아빠, 아버지의 모습을 깊이 새겨 주셨다.


 
▲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대성당과 산 아래 움브리아의 전경.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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