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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3)사제는 물가에 서 있는 어린아이 같다

아들의 한평생 고행의 삶 내다보시다, 소년 예수 앞날 걱정하는 성모님의 슬픔 담겨있어, 근심하던 어머니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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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자(부분), 사우스워크 대성당, 런던, 영국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에는 유적지와 교회, 공공 건물과 공동 주택이 아름답게 서 있다. 템스 강 남쪽에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성당, 사우스워크 대성당이 견고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212년에 세워진 대성당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서 제작된 다양한 유리화가 장식되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대성당 제단의 뒤편에는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작은 경당이 있고 이곳에는 성모자상과 영국인이 존경하는 여러 성인상이 유리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 유리화의 가장 중심에는 성모 마리아와 소년 예수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소박한 의자에 앉은 성모님은 한 손으로 예수의 어깨를 감싸고 슬픔에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는 앞으로 소년 예수가 걸어야 할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내다보는 듯하다. 천사 가브리엘의 전갈을 듣고서 하느님을 품에 받아들인 마리아의 겉옷은 하늘처럼 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고 소년 예수는 어머니의 푸른 옷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원죄 없이 태어나신 예수님은 순백의 통옷을 입고 한 손에 나무 자를 들고 서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목수였던 양부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가 들고 있는 삼각형 나무 자는 그분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가운데 한 분, 즉 성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후광에 붉은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것은 장차 그분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한 것을 뜻한다. 소년 예수는 자신에게 맡겨진 구원의 사명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맑은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강복하고 있다. 성모자를 감싼 이중의 원형과 그 안의 장식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 이들에게서 발산됨을 알려준다.

이 유리화 앞에서, 특히 소년 예수를 내려다보는 성모 마리아의 눈을 보면 나는 처음으로 수단 입었던 때를 떠올리곤 한다. 대신학교 4학년 때 독서직을 받기 위해 수단을 준비하여 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작은방에서 수단을 입은 후, 그 어엿한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주기 위해 거실로 들어갔다. 수단 입은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대단히 기뻐하시리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어머니의 눈에는 안쓰러움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왜 그런 표정을 지으셨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그 눈빛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도 연세가 많았던 어머니는 한평생 검은 수단을 입고 지낼 막내아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셨을 것이다. 수단을 처음으로 입고 철없이 좋아하는 아들과는 달리 어머니는 그 고행의 옷을 입고서 한평생 걸어야 할 아들의 고단한 삶을 미리 내다보셨으리라. 사제는 물가에 서있는 어린아이 같다며 아들 신부를 위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지금 천상의 어느 곳에 머무시며 철없는 아들 신부를 위해 어떤 기도를 바치고 계실까?


 
▲ 성모자와 성인상(전체),사우스워크 대성당, 런던, 영국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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