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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95. 정약용(요한)

초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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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유배지인 강진 다산초당에서 초의대사와 교류하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
 
 조선 후기 대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요한, 1762~1836)은 경기도 광주 마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정재원과 해남 윤씨의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6살 때 이가환 이승훈 등에게서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했고 한국천주교회 시작기인 1784년에 큰 형 정약현의 처남 이벽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듣고 입교했다. 명례방 집회에 참여하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에 연루되기도 한 정약용은 1791년 신해박해의 발단이 된 진산 사건을 계기로 신앙을 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반대파들 비판을 받았던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천주교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음에도 경상도 장기로 유배됐다.
 그러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다시 전라도 강진에 유배돼 18년 동안 생활했다. 이 시기에 다산학의 체계를 쌓은 정약용은 또한 혜장선사, 초의선사 같은 스님들과도 교류했다.
 1818년 가을 유배에서 풀려난 정약용은 1836년 75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향 마재에 거처하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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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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