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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18) 주님은 항상 우리와 동행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엠마오의 만찬’통해 예수님을 알아보다/ 빵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과 그 순간 놀라는 제자들 모습 표현/ 성체 받아 모실 때 주님 현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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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의 만찬’은 서울 가좌동성당에 있는 여러 유리화 가운데 한 점이다. 이 성당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양한 기법으로 묘사한 이남규(루카)의 유리화가 많이 있다. 성당 회랑과 성당 내부, 제단 부근과 성가대 계단, 성가대석 곳곳에는 그의 유리화가 신자들을 반기며 맞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그곳 출신의 두 사람도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분이 십자가 처형으로 돌아가시자 낙담한 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두 제자들이 자신들과 동행했던 그 낯선 인물이 바로 주님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은 빵을 나누어 주실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24,30)

유리화 ‘엠마오의 만찬’에는 위의 루카 복음서 내용이 단순하게 담겨져 있다. 이 작품에는 빵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과 그 순간 예수님을 알아보고 놀라는 제자의 모습이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일상의 생활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성제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주님의 현존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현재 사목하고 있는 장안동본당에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관할 구역을 파악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는 거리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나는 그분이 매일 미사에 참석하셨기 때문에 신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분도 성당의 기도 모임에 가신다고 하여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당 마당으로 들어서니 할머니는 “젊은 양반도 우리 성당에 다니시는가 보네요. 그런데 젊은이를 처음 보는 분 같아요. 얼마 전에 본당 신부님이 새로 오셨어요. 새 신부님도 젊은이하고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러니 가족과 함께 성당에 잘 나오세요”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가 새로 부임한 신부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손을 잡고 “저는 우리 성당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아직 눈에 익지 않아 낯설고 어색합니다. 부족한 본당 신부인 저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세요”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당신의 눈이 나빠서 새로 부임한 신부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며 무척 미안해했다.

요즈음에도 할머니는 매일 미사에 나오시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그분은 다른 신자들과는 달리 언제나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곤 한다. 그때 신부님을 알아보지 못한 점에 대해 지금도 거듭 거듭 미안해하는 그분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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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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