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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신앙의 명맥 잇는 조병옥·노외자씨 부부

“순교자 후손으로 신앙 전파에 헌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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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필립보·65·수원교구 양평본당)씨의 한양 조씨 양경공파 양근 능말 한흥군 족보는 거슬러 올라갈수록 신앙 안에서 친숙한 이름들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의 고조할아버지의 8촌 격이자 하느님의 종 124위에 포함된 조숙(베드로), 정하상의 스승이었던 조동섬(유스티노)과 그의 아들 조상덕(토마스) 순교자를 찾을 수 있다. 족보는 뿌리를 뻗어 유항명과 혼인해 유체칠리아를 낳고, 다시 정약종과 혼인해 정하상과 정정혜를 만난다.

■ 순교자의 후손이 사는 법


 
▲ 관련 자료를 보며 말하는 조병옥씨.
 
신앙의 명맥을 잇는 족보와 집안 내력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조병옥·노외자(엘리사벳·62)씨 부부는 특별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전원주택 뒤로는 부부가 직접 십자가의 길을 만들었고, 앞마당에는 커다란 성모상과 장미를 심어놓았다.

성지가지로 쓰려고 마당에 심은 측백나무는 커다랗게 자랐다. 양평본당 신자들이 성지주일 전 이곳을 찾아 성지가지를 마련한다니 그 나무의 무성함을 알 법하다.

“1993년이었던가, 집 뒤로 저희 선조들의 무덤 7기가 있었어요. 너무 오래 되고 풀이 무성해서 파묘(破墓)를 하려는데 지석도 없어 누구의 묘인지도 몰랐지요. 7기 가운데 유골이 한 기만 있었는데 제가 뒷마당에서 화장을 해드렸어요.”

당시 조씨는 신앙을 이어오는 집안 내력에 대해 구전으로 들었던 적이 있지만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양평본당이 설립 50주년을 맞아 총회장이었던 그가 50년사를 준비하며 집안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던 것이다.

“당시 본당 50년사를 만들면서 여러 교회사 자료들을 공부하던 중에 저희 집안 내력에 대해 잘 알게 됐습니다. 아직도 정확히 ‘누구의 묘’라고 말할 순 없지만 조상 중에 신앙선조가 대부분이니 그분들 중 한 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곧바로 유골을 화장해 묻었던 땅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거룩하게 살다갔던 선조들의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땅을 고르게 한 뒤 잔디를 심고, 당시 본당에서 소임을 맡았던 방글라라 수녀(서울성가소비녀회)의 14처 작품을 바위에 안치하고 나무에 십자가를 걸었다.

조씨의 집 뒤편 십자가의 길은 이제 가족은 물론 마을사람들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꽃구경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만나게 되고, 이곳이 내뿜는 아늑한 기운과 얽힌 사연을 듣고 감탄한다. 지난 5월에는 천주교 순교자 유적 답사회의 주최로 이곳에서 ‘양근 능말 관련 순교자 현양미사’도 봉헌했다. 200여년 만에 처음 화답하는 후손의 기도인 셈이다.



 
▲ 자녀들에게도, 손자들에게도 ‘이렇게 살라’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신앙의 명맥을 전하려고 노력 중인 조병옥·노외자씨 부부.
 
 
■ 신앙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이름은 어깨에 많은 짐을 지우게 했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선조의 신앙을 본받고, 남들의 기대에 맞갖은 삶의 모습을 지켜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부부는 “남다르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때때로 신앙선조의 후손이라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집안 곳곳에 심어놓은 신앙의 향기는 언제나 그들이 신앙 안에서 깨어있도록 하는 힘이 된다. 이제 다 커버린 자녀들에게도, 손자들에게도 부부는 ‘이렇게 살라’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신앙의 명맥을 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신앙을 가르쳤고, 신앙선조들이 그러했다.

5월에 봉헌한 양근 능말 순교자 현양미사에 참례했던 한양 조씨 종중(宗中)의 어르신들도 비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지역에 조동섬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을 갖고 다양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양미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죠. 그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사는 모습을 통해 이어질 후손들에게 신앙을 전하려고 합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십자가의 길, 조씨 족보에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들은 일순간 시간을 멈추게 한 듯 한국교회사의 한복판으로 돌아가게 한다. ‘신앙선조의 후손’이란 신앙선조들이 한 때 이 땅에서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는 증거이자, 계속해서 이어질 후손을 통해 신앙을 이어가게 할 매개체다.


 
▲ 성모상.
 


가톨릭신문  20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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