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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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버킷 리스트 독창회 연 소프라노 정명숙씨

“위암 4기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2011년 위암 선고…,/ 버킷 리스트 실현하기로 마음 먹고/ 한 주는 연습, 한 주는 치료 반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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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와 병원 원목실 등을 찾아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정명숙씨.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5월 11일, 서울 성북구 보문로 성신여대 수정관 수정홀에 300여 명의 관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전문 성악가도, 대학 교수의 무대도 아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아마추어 성악가 정명숙(아녜스·서울 구로2동본당)씨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 버킷 리스트의 꿈

“브라보!”, “앙코르, 앙코르.”

지난 1월부터 준비해 온 꿈의 무대가 끝나는 순간, 정씨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두 시간 남짓한 공연에 지쳐 몸을 가눌 힘조차 없었지만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부른 노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양희은의 ‘한계령’. 희망을 노래하는 그가 특별히 선곡한 곡이다. 모든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를 응원했다.

정씨는 위암 4기 환자다. 2011년 말 선고를 받은 후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왔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를 잡아준 것은 하느님과 음악이었다.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 저절로 힘이 났고 아픔마저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암세포가 언제 폐로 전이될 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육십 평생 꿈으로만 간직했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회갑연을 대신해서 독창회를 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최근 병원에 가면 가슴 엑스레이를 꼭 찍더라고요. 폐에 전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어요.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죠.”

독창회 준비를 항암치료와 병행했다. 한 주는 치료받고, 한 주는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심각한 병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래만 부르면 힘이 났다.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보였다. 물론 준비과정이 그에게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독창회 후 음악적으로 부족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뜨겁고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를 부른 덕분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했어요. 저보다 더 좋아해주시고 축하해주시는 분들을 보니 하느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네요.”


 
▲ 독창회에서 2부 무대에 함께 오른 ‘은손네’ 멤버와 정명숙씨.
 

■ 치유와 희망의 노래

음악은 정씨 삶의 전부였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하모니카 연주와 형제들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음악인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정씨가 아니었다. 어느 수녀님의 손에 이끌려 본당 성가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묵혀놓은 꿈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위해 5년 전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성악반에 입학했다. 공부가 한창인 3년 차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는 꿈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날개를 펼쳤다. 독창회 2부 무대에 함께 오른 ‘은손네’ 멤버들과 함께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를 방문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얼마 전부터는 고려대 구로병원 원목실 주일미사에서 찬양 봉사를 시작했다. 정씨의 노래는 특히 병원에서 빛을 발했다. 미사 참례자 중에는 정씨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목소리 하나로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로한다. 자신이 환자이기에 병원에서 부르는 노래는 선곡부터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영성체 후 특송을 부르면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다. 슬퍼서가 아니다. 깊은 치유와 희망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원성묵 신부(고려대 구로병원 원목실장)는 “정아녜스 자매님은 목소리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곱다”면서 “2주에 한 번씩 오실 때마다 환자와 보호자, 병원 식구들에게 감동과 치유를 선물해 준다”고 말했다.

■ 다시 수술대에, 여전히 꿈을 꾼다

난소에 생긴 혹을 제거하기 위해 정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착잡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폐암과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빠와 언니의 장례를 직접 치르면서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도한 그는 그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래서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 더 깔끔하고 예쁘게 하고 다녀요. 가끔은 ‘정말 아픈 사람이 맞나?’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예요.”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병마와 싸우는 정씨 뒤에는 항상 남편과 두 아이, 본당 식구들의 후원과 기도가 있다. 지난해 간에 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본당 신자들이 총출동했다. 지금도 성당에 나가면 모르는 신자들이 손을 잡고 걱정해준다고 한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기도가 저를 버티게 한다”고 말하는 정씨는 그 힘으로 여전히 꿈을 꾼다. 또 다른 버킷 리스트를 실현해 나간다.

“생각만 하면 꿈에 머물러 있어요. 행동으로 해야 현실로 이뤄지죠.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렇게 이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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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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