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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3) 대구 서문시장

수백 년 지역민과 함께한 현재 과거 숨쉬는 삶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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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시장 입구.
 

시장은 삶이 모이는 곳이다.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해 온 사람들 모두 저마다 삶의 이야기를 지닌 채 이곳을 찾는다. 삶, 물건, 사람이 엉켜들고 흩어지는 곳이기에 시장은 늘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특히 크고 오래된 시장일수록 그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서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세 번째 순서에서 찾은 대구 서문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서문시장은 지역민에게 시장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추억의 장소’로 여겨진다. 조선 중기부터 형성되어 모든 역사를 지역민과 함께 겪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예전 이름은 ‘대구장’이었지만, 경상감영이 대구 읍성에 자리한 1601년부터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평양장·강경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꼽히면서부터는 ‘큰장’이라고 불렸다. 그 이름만큼 현재에도 약 5500여 개의 점포에, 3만여 명의 상인이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역사 덕분에 서문시장은 그 자체로 대구 시민의 ‘이웃’으로 존재한다. 2005년 발생한 화재 등 잦은 사고로 서문시장이 고난을 겪을 때마다 시민들은 이웃을 응원하듯 한마음으로 서문시장과 그곳 상인들이 재기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화재로 폐점됐던 2지구는 7년 만인 2012년에 재개장될 수 있었다.

시장의 나이만큼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도 오랜 경력을 자랑한다. 한곳에서 30년 장사를 한 상인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2년도 힘들다는 시장살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수십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바라보는 서문시장은 어떤 의미일까.


 
▲ 대형마트 난립 등으로 서문시장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직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많다. 현대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거리에 난전을 펼친 할머니 등의 모습에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매력을 찾을 수 있다.
 


■ 주단 거래 30여 년, 봉사활동 40여 년

서문시장은 예부터 주단·포목 등의 섬유 거래가 많아, 전국에서 유명한 원단 시장으로 손꼽혀 왔다. 손순란(힐데가드·62·계산본당)씨는 그곳에서 주단 점포만 30여 년 동안 운영해왔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가게문을 닫는 7시까지는 가게에 매여있는 생활. 하지만 손씨는 시장이 아닌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생활하고 있다. 퇴근 후 시간에는 전례 봉사를 하거나 신앙 관련 강의를 수강하고, 주말 역시 전례 봉사를 하거나 빈첸시오회 활동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손씨가 성당을 처음 찾은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집 근처 양로원에서 신앙과 관계없이 ‘그저 좋아서’ 봉사활동을 하던 손씨는, 여러 제약을 받지 않고 봉사 활동에만 매진하고 싶어 수녀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이후 세례를 받고 본격적으로 성당에 다니면서 지금까지 손씨는 쉬지 않고 봉사 활동을 이어왔다. 봉사와 신앙이 함께 엮여, 둘 모두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손씨에게 준 것이다.

손씨는 “신앙이 있었기에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꾸준히 가질 수 있었고, 나눌 수 있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생활이 바쁘고 힘들수록 신앙 안에서의 여유로움, 나눔의 행복을 찾는 것이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 전국에서 유명한 원단 시장으로 손꼽혀온 서문시장에서 30여 년째 주단 점포를 운영해 온 손순란씨.
 오랜 경력만큼 전국의 한복 소매상들이 손씨의 가게를 찾는다.
 

■ 행상에서 노점까지, 길 위에서 보낸 45년

이순덕(마리아·73·계산본당)씨는 서문시장 노점에서 20여 년째 죽을 팔고 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45년 전 쯤. 결혼 직후부터 시름시름 앓다 몸져누운 남편을 대신해 아들을 엎은 채 오뎅 등을 머리에 이고 여기저기에 팔러 다니기 시작했고, ‘큰 시장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서문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길 위 장사로 4남매를 키워냈다.

23살에 첫 아이를 낳고 산책을 하다가 집 근처 성당에 끌리듯 몇 차례 찾아간 것이 신앙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이씨의 기도는 ‘4남매가 건강히 성장하는 것’과 ‘남편이 함께 성당에 나오는 것’ 두 가지였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장해 생활이 안정되어가던 10여 년 전, 시련은 다시 이어졌다. 늘 병약했던 남편이 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병원비 등을 마련하느라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이 때 이씨는 시장 바닥에 서서 눈물을 훔치며 ‘남편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씨는 힘든 시간들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든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 그저



가톨릭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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