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아(2사무 5,9) 정치ㆍ종교의 중심지인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세운 도성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슐레이만 2세가 1532년부터 1539년까지 복원한 것이며 다윗 도성은 이 성곽 밖에 위치한다.
가운데 황금돔 모스크 자리가 바로 모리야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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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지성소를 모셨던 성채를 `평화의 도시``평화의 근원`이란 뜻의 히브리말 `예루살라임`이라 부른다. 우리에게 라틴말 `예루살렘`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앙 산악지대 기혼 샘이 있는 키드론 골짜기 서쪽 해발 760m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 유다 광야, 서로 쉐펠라 목초지, 남으로 베들레헴, 북으로 벤야민 산지가 있다.
▲ 기혼샘 워렌 수직 터널. 1867년 영국군 워렌 대위가 발견한 이 터널은 지름 2m의 원통형 수직 터널로 적에게 성이 포위됐을 때 성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유일한 식수원인 기혼샘에서 물을 길어올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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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 도성을 세워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왔다(2사무 6장 참고). 다윗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창세 22, 1-22) 모리야 산에 집터를 정해 `시온`이라 했고, 솔로몬이 그곳에 주님의 집을 지어(2역대 3,1)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셨으며(2역대 5,2-7.10),`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다(1열왕 8,1-66).
▲ 토라(모세오경)에 따르면 모든 유다인 남자는 매년 초막절, 수확절, 추수절 때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했다.
13세부터 이 의무가 적용됐지만 유다인들은 이 율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12세 때부터 대부분 순례를 떠났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도 12세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
사진은 만 13세가 된 한 유다인 소년이 가족과 함께 토라 율법 규정을 지킬 의무를 서약하는 예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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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해 삶의 중심이 됐다. 토라(모세오경)에 따라 이스라엘 모든 남자는 해마다 과월절(파스카)과 수확절(오순절), 추수절(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탈출 23,14-17 참조). 또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루 3번씩 기도하는(다니 6, 11) 풍습이 생겨났고, 회당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지어졌다. 예수의 부모도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곤 했고, 예수도 12세 되던 해 토라에 따라 예루살렘 축제에 참가했다(루카 2, 41-42).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일 년에 세 번 성전에 감으로써 이스라엘은 순례 중에 있는 하느님 백성,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는 백성이 되며, 유일한 성전에서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과 단일성을 받아들이는 백성으로 머물 수 있었다"(「나자렛 예수」 2권, 168쪽)고 설명한다.
▲ 최근 고고학 발굴로 드러난 다윗 도성 아이엘의 집 돌기둥.
이 집 형태를 보면 솔로몬 성전 시대에 유행했던 4개 방 구조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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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가톨릭평화신문 201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