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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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안양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

엄마의 손길 가득한 ‘평범’한 우리집이 좋아요
부모와 생활하기 어려운 남자아이들 모여 이룬 가족 공동체
어린 시절 받은 상처 치유·정서적 안정 찾도록 관계 형성
“바르게 성장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 마련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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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 신효숙 원장과 다섯 명의 아이들.
 
교회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신다. 교회는 마리아 공경을 통해 그분의 아드님을 올바로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한다. 마찬가지로 가정 안에서 어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게 해준다. 하지만 여러 환경의 영향으로 그런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돼주고 가정이 돼주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 안양에 위치한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밥 먹고 학교 갈 채비를 해서 집을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 ‘우리집’의 아침은 지극히 평범하다. 다만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가족 중 그 누구도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 ‘우리집’은 그냥 평범해요. 그래서 좋아요.”

‘우리집’에서 생활하는 수민(13·가명)군이 ‘우리집’을 설명했다. 더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찾기에 바쁜 요즘 아이들이건만 ‘평범’해서 좋다고 말하는 수민군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토록 바라던 ‘평범’이다. 그저 집이 있고 음식이 있고 함께 이야기할 가족이 있은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집’의 아침 풍경처럼 겉보기엔 너무도 평범해 보였지만 ‘우리집’에 오기 전까지는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아이들이었다. ‘우리집’은 가정 사정으로 자신의 친부모와 함께 생활할 수 없는 남자아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그룹홈이다. 현재 ‘우리집’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 이 아이들은 ‘우리집’ 신효숙(체칠리아) 원장과 함께 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집’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신 원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한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이다. 어린 시절 가정이 안정되지 않아 생긴 상처는 청소년기 전반에 걸쳐 불안정한 정서를 형성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에 처음 온 아이들은 대부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지고 있었다. 불과 20분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주의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거나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댈 정도로 도덕관념도 약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안정된 환경과 관계형성이었다.

특히 관계형성은 아이들의 변화에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신 원장은 새로 온 아이들에게 가정의 모습을 먼저 보여줬다. 함께 식사하고, 간식을 나누고, 대화하고, 많이 웃고, 칭찬했고, 약속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겉으로는 늘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의식주도 안정시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집’을 운영하는 돈은 대체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받는 최소한의 돈인 생계비다. 전기, 수도, 가스 등에 한창 식성 좋은 청소년기 남자아이 다섯을 키우자니 돈이 많이 든다. 후원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게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인식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다보니 겉보기에 어려움이 없어보여 오히려 후원이 없는 실정이다.

집안의 가구들도 다른 집이 이사 가면서 버린 깨끗한 가구나 중고가구를 사용하고, 전세금이 오르면 낼 길이 없어 해를 넘길 때마다 거리에 나앉을 염려에 전전긍긍해야 한다. 당장 올 연말만 해도 전세값이 올라 급히 지인들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고 그렇게 돈이 빠지고 나니 얼마 전에는 쌀이 다 떨어져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교구·수도회나 큰 기관이 운영하는 그룹홈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우리집’을 돕는 도움의 손길은 거의 없다.

어려움은 경제적인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좋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춘기 남자아이들과 생활하다보니 신 원장 역시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다. 어른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었다. 갈등이 생길 때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생겼고, 강하게 훈계할 때는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면서 너무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울 적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다보니 세상과 단절돼 개인생활이 없어진 적도 있었다. 그럴때도 신 원장은 ‘우리집’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 원장이 ‘우리집’을 포기하면 아이들은 더 큰 상처를 입고 살아야했다. 신 원장은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나를 성숙시켰다”면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셔서 성숙할 수 있게 도와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래에 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집’에 와서 미래를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어요.” - 희성군(17·가명)

무엇보다도 큰 보람은 바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이었다. 신 원장의 노력 속에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 자존감도 없고 소극적이어서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아이가 대화의 문을 열었고 말도 행동도 거칠기만 하던 아이가 차분해 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됐다.

아이들이 귀가하고 저녁시간이 되기 전, 가족회의가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집’에서 열리는 가족회의는 상대적으로 표현력이 약한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들의 ‘이모’인 신 원장이 간섭하지 않는 대화의 장에서 신 원장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 “생명의 은인”, “내게 꼭 필요한 분”. 표현은 서툴렀지만 신 원장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신 원장이 ‘우리집’을 꾸린지도 벌써 18년. 많은 아이들이 ‘우리집’을 거쳐 갔고 이제 어른이 돼 ‘우리집’ 인근에 보금자리를 꾸민 이들도 여럿이다. 보육원은 시설에 머무르는 기간이 끝나면 대체로 아이와 보육원과의 관계가 단절되곤 하지만 ‘우리집’에서는 아이들이 떠나도 신 원장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집을 마련하도록 도와주고 만나면 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묻고 또 묻는다. 마치 다 큰 아들한테 잔소리하는 어머니같다.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우리집’을 거쳐간 모든 아이들이 신 원장의 자식이다. 아이들에게 어머니보다도 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준 신 원장에게 어떻게 아이들의 어머니가 됐는지 물어봤다.

“어머니가 되는 건 잘 몰라요.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겠다고 노력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사는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 주려하고 그냥 아이들을 사랑하고 선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해요.”

※후원계좌 국민은행 620601-01-257987 농협 544-12-459938 예금주 신효숙(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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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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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1장 17절
주 하느님, 주님께서는 제 어릴때부터 저를 가르쳐 오셨고, 저는 이제껏 주님의 기적들을 전하여 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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