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장애, 하느님께 가는 훈련

시각장애인 로렌스 길릭(예수회) 신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회장 윤재송 시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미국 시각장애인 사제 로렌스 길릭(Lawrence Gillick, 예수회) 신부를 2일 서강대학교 사제관에서 만났다.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선교회가 시각장애인 사제 양성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초청한 길릭 신부는 1일 한국을 방문, 부산ㆍ광주ㆍ서울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와 충주성모학교 등지에서 강연했으며 13일 출국한다.
 

 
▲ 미국 시각장애인 로렌스 길릭 신부는 우리의 가장 깊은 본질적 정체성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무엇이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내 키, 신발 치수 다요!"

 예수회 부관구장 민기식 신부 안내로 만난 백발의 노사제 로렌스 길릭 신부는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Open(열다)" 하겠다고 말했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진 않을까 고민하는 기자의 마음을 먼저 읽은듯 그는 인터뷰 내내 `Good Question!(좋은 질문)`이라고 말하며 기자를 먼저 배려했다.

 길릭 신부는 8살이던 1948년 계단 난간에 앉아 있다가 균형을 잃어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시력을 잃었다. 지금의 의료기술이면 약만 먹고도 나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원인을 밝히지 못해 시각장애인이 됐다.

 "처음 시력을 잃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10대가 된 뒤 다른 아이들처럼 운동도 못하고 텔레비전도 보지 못하고 운전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독립하는 것을 배워갈 때 저는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했지요."

 예수회가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길릭 신부는 예수회 수사인 삼촌 등에게 감화를 받아 1960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평수사들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미국 성 루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실습과정으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다"는 동료의 격려와 "평수사보다 사제로서 교회를 섬기는 게 좋겠다"는 조언 덕분에 캐나다 레지스 신학대학교에서 신학과정을 밟고 1979년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식 1시간 반 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는 길릭 신부는 미국 예수회 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으로 사제가 됐지만 "내가 잘나서 사제가 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시각장애인 사제가 단지 `한 명`이기에 제가 특별해 보일까 우려됩니다. 저는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를 드러내게 도와준 예수회 형제애의 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제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잠시 목이 잠겼다. 컴퓨터, 보이스 레코더 등 기계들이 없던 시절, 그는 책을 읽거나 캠퍼스 내에서 이동하려면 봉사자에게 의존하는 법, 도움을 청하는 법, 그리고 봉사자가 도움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봉사자의 팔을 잡고 가다가도 전봇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하느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제가 된 뒤 캐나다 레지스 대학교와 미국 크레이튼 대학에서 연학수사 영성지도를 담당한 그는 학생들이 먼저 인사하지 않는 이상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제일 마음 아팠다. 두려움과 열등감 역시 그가 계속 극복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미사를 할 때면 신자들이 대부분 그가 하는 강론이 아닌 그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많은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들을 격려하려 한국에 온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고 영성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로 여겨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본질적 정체성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기도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내린 정의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은 `눈먼` 사람들(blind people)이 아니라 `사람`인데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people with blind)일 뿐입니다."

 기자 역시 그를 `시각장애` 사제로만 바라본 것 같아 조심스러워하며 사제의 해를 맞아 장애 여부를 떠나 성소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먼저 성소를 식별하기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사제가 되기 전에도 이미 사제가 된 사람처럼 교회 안에서 활동하며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시각장애인 사제가 난다면 개인적 차원이나 시각장애인들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불림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목자로서 그는 "교회와 사회가 약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도 "약자들도 교회와 사회에 다가가려는 노력,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크레이튼 대학교 이냐시오 영성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신자로서 어떻게 하면 영성적 삶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영성은 긴장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계속 상기하며 주어진 사명을 사는 것이지요. 더 무거운 역기를 들수록, 즉 근육에 긴장을 줄수록 근육은 강해집니다. 이처럼 긴장은 성장을 위한 것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만을 찾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 안에서 `파견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7-1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9

신명 31장 6절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