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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을 따라서] (1) 오틸리엔 수도원에 한국역사 살아 숨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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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을 흘러 이어오는 가톨릭교회 신앙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영성의 근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한국 주교회의가 중앙 일간 신문사 종교담당 기자단과 교계 주교회의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이번 유럽 성지순례는 그리스도교의 정수(精髓)를 알아보고자 하는데 초점이 두어졌다.

그 안에서도 중심점은 수도원이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어려움의 고비 고비마다 쇄신과 개혁의 고삐가 되었던 수도원, ‘교회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주는 허파 역할’ 로 비유되곤 하는 수도원을 찾아 수도자들의 수도생활을 살펴보는 시간들이 주된 테마로 이어졌다. 이외 가톨릭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로마 바티칸을 찾는 시간과 함께 가톨릭의 대표적 성모발현 순례지, 프랑스 루르드 순례 및 파리외방전교회 탐방 등의 기회도 마련됐다. 그 순례의 여정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 성오틸리엔수도원 대성당 전경. 수도원에는 현재 약 1백 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독일 뮌헨서 순례 첫 걸음

순례의 첫 걸음은 독일 뮌헨에서 시작됐다. 독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바이에른주의 주도 뮌헨은 수도사를 뜻하는 ‘묀히’(monch) 라는 단어에서 비롯될 만큼 가톨릭과 깊은 연관이 있다.

도시가 형성되기전 베네딕도회 수도사 몇 명이 공동체를 이뤄 살기 시작했고 이후 그 곁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됐다고 한다. 검정색 수도복을 입은 아이의 형상이 뮌헨의 아이콘으로 설정된 것도 바로 그러한 배경이다.

역사적으로 바이에른 주 자체가 17세기 바이에른 공화국 시절부터 신성 로마제국내에서 가톨릭의 보루 역할을 했고 막시밀리안 1세의 치세에는 30년전쟁을 맞아 신교 세력에 대항하며 종교개혁 바람을 막는 중심지가 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자단은 수도사들이 처음 공동체를 세웠던 곳에 지어졌다는 미카엘성당을 비롯 성모마리아성당 등 유서깊은 성당들과 마리엔 광장 등을 둘러보며 뮌헨의 역사 안에 깃들어져 있는 가톨릭 신앙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마리엔 광장은 뮌헨시의 가장 중심지라 할 수 있는데, 광장 중심에 우뚝 솟은 성모님 기둥이 인상적이다. 30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것과 함께 1634~35년경 유럽 전역을 강타했던 페스트에서 무사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한다.

 


 
▲ 뮌헨시청사 앞 마리엔광장.
왼쪽에 성마리아 성당의 돔이 보인다.
 
 
오틸리엔 수도원 방문

뮌헨에 이어 기자단은 본격적인 수도원 순례 일정에 돌입했다. 뮌헨에서 서쪽 방향으로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간 곳은 베네딕도회 오딜리아연합회의 본부, 한국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모원이라 할 수 있는 성 오틸리엔(St.Ottilien) 수도원이었다. 선교활동을 표방하고 해외로 진출한 첫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다.

수도원 인근에서는 민가를 찾기가 어려웠다. 옥수수밭 호밀밭 목초지뿐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 속 수도원 풍경이었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100여년 전의 한 역사적 장면이 떠올랐다. 기록에 따르면 1908년 9월 15일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고등 교육기관 설립에 적합한 수도회 물색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왔던 뮈텔 주교는 이를 위해 수많은 수도회를 방문했으나 인력부족 등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로마에서도 역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던 뮈텔 주교는 포교성성 장관 고티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오틸리엔 수도원을 소개 받았다. 귀국일정까지 늦춰 수도원을 찾았던 뮈텔 주교는 놀벨도 웨베 아빠스를 만나 한국 사정을 전하며 선교사 파견을 청했다.

상트 오틸리엔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884년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에 의해 시작, 선교의 틀을 막 잡아나가던 상황에서 1887년 아프리카에 첫 선교사를 파견한 이후 여러 가지 면에서 여력이 부족하던 때였다.

그러나 뮈텔 주교의 설득으로 웨버 아빠스는 이듬해 1월 11일 모원 경리책임자 도미니쿠스 엔쇼프 신부와 딜링엔 수도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원장신부를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에서 베네딕도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고 남자수도회가 처음으로 한국 땅에 공동체를 마련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오틸리엔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성녀 오딜리아에게 봉헌된 조그만 경당이 있었던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정문을 지나 순례자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 입구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는 현대적 느낌의 예수상이 있었다. 속세의 번잡함에서 깊은 영혼의 울림을 갈구하며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보듬어 주시는 예수님을 보는 느낌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 안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내려놓아지는 듯 했다.
 



가톨릭신문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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