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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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우표에 신앙을 담아 전하는 안세훈(벤체슬라오)씨

“우표를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며 하느님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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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새해를 축하하는 연하장에도, 성탄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카드에도, 멀리 떠난 친구의 엽서에도,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아들의 편지에도. 우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情)을 전달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자통신매체가 발달하고 편지를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바코드가 우표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우표를 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한때는 너도나도 우표를 수집한다며 찾아다녔지만 이제 우표수집도 추억의 뒤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우표가 잊혀가는 세상 속에서도 반세기를 넘나든 우표인생에 신앙을 담아 전하는 이가 있다. 바로 춘천교구 기린본당 안세훈(벤체슬라오·65)씨다.


 
▲ 안세훈씨가 수집한 우표들을 살펴보고 있다.
 

 
▲ 벤체슬라오 성인의 우표는 안씨가 아끼는 우표 중 하나다.
 

안세훈씨가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건 5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중학생 시절이다. 당시 체신부(현 정보통신부)는 외국과 수교를 맺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펜팔을 권장하고 있었다. 해외로 보낸 수많은 학생들의 편지 중엔 안씨의 편지도 있었다. 그리고 스웨덴의 한 소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의 편지가 신기했지만 안씨의 눈에 그보다 더 신기하게 비친 것은 바로 우표였다. 이 우표가 안씨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작디작은 우표 한 장엔 세계가 담겨 있었다. 각 나라의 수도, 유명한 사람, 그 나라의 사정, 자연환경. 사회과목을 좋아했던 안씨는 점점 더 우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우표의 세계는 넓고 또 깊었다. 일반 사람들에겐 언뜻 단순한 종이조각으로 보이지만 안씨의 우표에는 제작일자, 인쇄방법, 구멍수, 인쇄내용 등 우표의 이력이 자세히 담겨 있다. 또 나라마다 우표에 특색이 있었고 우표에 담겨있는 내용을 공부하게 됐다. 이렇게 우표를 공부하는 중에 어느새 안씨의 우표 수집은 우표라면 무조건 수집하는 제너럴 컬렉션(General Collection)에서 주제를 정해 심도 있게 수집하는 스페셜 컬렉션(Special Collection)으로 변했다.

처음으로 잡은 주제는 미국의 역사였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청교도의 이주 등 유명한 이야기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사가 우표에 담겨 있었다. 시기별, 사건별로 우표를 배치하고 우표의 정보와 담겨 있는 역사를 정리했다. 우표수집가들은 이렇게 주제별로 우표를 정리해 모은 수집물을 ‘작품’이라고 불렀다. 안씨의 ‘작품’은 1980년대 열린 전국 우표전시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해오던 우표수집이지만 생활에 쫓겨 수집에 신경을 쓸 시간도 줄어들었고 수집했던 우표들의 대부분을 소실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렇게 안씨는 우표와 멀어지고 있었다.

안씨가 다시 우표를 찾게 된 것은 2000년 쉰을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나서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안씨의 눈에 우표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교리를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교회를 주제로 한 우표들을 모으고 공부하게 됐던 것이다.

“성당에 다니고 성경을 읽게 되면서 성경의 이야기들을 우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막상 찾아보니 굉장히 종류가 많아요. 유럽지역은 물론이고 식민 지배를 받았던 수많은 작은 나라에서도 교회와 관련된 우표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씨는 구약성경, 신약성경,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역대 교황 등 교회에 관한 다양한 테마로 우표를 수집하고 정리해나가고 있다. 교회를 주제로 우표를 수집하다 보니 저절로 교리공부가 됐다. 늦게 시작한 교리공부였지만 좋아하던 취미를 통해 공부를 하니 더 머릿속에 잘 들어왔다. 성경의 일화, 성모님의 이야기, 성인들의 생애, 교회의 역사 등 방대한 지식이 우표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교회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면서 새로 수집한 우표들도 있지만 사실 이 우표들의 대부분은 이미 안씨가 수집한 우표에 숨어있던 우표들이다. 교회와 관련된 우표인지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교회와 전혀 관계없는 우표도 성경의 이야기를 우표로 꾸밀 때 꼭 필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안씨는 수집가로서 특별한 의미 없이 모은 우표들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면서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을 머릿돌로 쓰신 하느님을 체험했다.

“천지창조나 다윗왕 등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담긴 많은 우표들이 수집가들 사이에선 ‘누드(Nude)’로 분류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수집가들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우표들이 성경을 주제로 모으게 되면 훌륭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발행된 지 오래된 우표들은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구할 수 있다하더라도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우표수집가들과 교환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성경을 주제로 한 우표는 개신교 신자 수집가들이 많아 교환하기가 비교적 수월했지만 가톨릭교회를 주제로 한 수집가는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안씨는 우표수집 작품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안씨는 정성스레 만든 작품을 개인 소장에 그치지 않고 춘천교구 홈페이지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rongiee)를 통해 전시하고 있다. 또 지금 준비하는 작품들이 완성되면 이제까지 만들어온 작품들을 보완해 개인전시회도 열고자 하는 꿈도 갖고 있다.

“제 나이쯤 되면 편안한 노후를 생각해야 할 때인데 저는 오히려 우표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지금이 한창 때로 느껴집니다. 저는 말이 서툴러서 선교를 잘 못하지만 제 취미로 만든 작품에서 우표를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며



가톨릭신문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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