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가톨릭 쉼터] 평택 엠마우스의 아시아 헤어샵 이야기

“고향 떠나온 마음 알기에 사랑으로 봉사”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보면 낯선 이와도 어느새 친구가 된다. 수다의 화제는 그 종류도 다양한데 시댁, 며느리, 사위,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흘러간다. 이처럼 사람 냄새나는 미용실이 이주민 사목센터 평택 엠마우스 안에도 생겼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모델을 하는 한국연예인 사진과 베트남연예인의 사진이 함께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12일 주일, 곧 눈이 감길 것만 같은 나른한 오후 3시. 평택 엠마우스 ‘아시아 헤어샵’의 낡은 문고리를 돌렸다.

▧ 아시아 헤어샵 사람들

아시아 헤어샵, 미용실의 작은 규모 탓에 이주민들이 문 밖으로 줄을 서 있다. 밖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이는 모두 넷, 안에서 기다리는 이는 둘이다. 중화제를 바른 채 차례를 기다리는 이와 머리를 자르는 이들은 모두 셋, 미용실 주인과 보조를 더하면 총 11명이 오후 3시 작은 ‘아시아 헤어숍’의 공간을 바쁘게 채우고 있었다.

벽면에는 평택시청에서 허가해준 미용사 면허증과 영업신고증이 걸려있다. 영업소 명칭은 아시아 헤어샵, 직종은 자랑스러운 미용사(일반)다. 두 장의 증서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 미용실 대표 정설화(베트남·정티투이엑화·26)씨는 미용사 면허증을 보면 이내 눈이 시려진다.

베트남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언니를 도와 어깨 너머로 배웠던 미용기술이었다. 한국으로 시집와 아이를 키우며 덩그러니 남겨진 외로움과 싸우다가 내린 소중한 결정, 미용사 면허증 취득.

평택 엠마우스의 도움으로 미용학원을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미용기술을 익혔지만 문제는 항상 한국어 필기시험이었다. 일곱 번의 불합격, 그리고 합격. 칠전팔기의 주인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난해 2월, 평택 엠마우스는 내친 김에 정씨의 창업까지 도왔다. 창업연계형 프로그램을 고민하던 중, 그의 기술과 꿈을 썩히기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공장을 찾아가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도 했다. 그렇게 엠마우스 건물 2층 귀퉁이에 둥지를 튼 작은 ‘아시아 헤어샵’은 정씨와 제2의 정씨를 좇는 이주민들의 꿈으로 자라고 있다.

베트남 노래가 작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온다. 그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머리를 미용사에 맡기는 이들은 단지 베트남인들뿐만 아니다. 캄보디아, 태국, 네팔, 필리핀. 다양한 이주민들이 찾아와 동남아시아의 향수에 젖는다.

평택 엠마우스 사무국장 김우영씨는 “이주민들이 한국 미용실에 가면 서비스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비싼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면서 “미용사가 꿈인 이주민들을 교육생으로 선발하고 장사도 잘 돼 규모를 늘려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 결혼이민자이자 미용실 대표 정설화씨가 아시아 헤어샵을 찾은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 정설화씨와 같은 미용사를 꿈꾸며 미용기술을 배우는 이주민 여성.


▧ 이루고 싶은 꿈

아시아 헤어샵은 평택 엠마우스가 마련한 창업연계형 프로그램 가운데 비교적 활성화되고 있는 경우다. 비즈공예, 쌀국수, 빵집, 전통공예품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나 여러 이유로 어려움에 처해 문을 닫았다.

그동안 실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은 미용실은 이주민들을 평택 엠마우스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노동상담을 받는 이주민의 숫자도 늘어가고 있다. 편견을 피하고 향수를 좇아 주말이면 30여 명의 이주민들이 ‘아시아 헤어샵’을 찾는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바쁜 가위질을 계속하는 정설화씨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저희 남편은 이제 제가 미용사 일을 할 수 있도록 애기도 봐주고 도와줍니다. 처음에 시어머니랑 남편 일하러 나가시고, 저 혼자 임신해서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을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미용실 운영하고 나서는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고향을 떠나온 마음을 알기에 오늘도 그는 자신의 손길에 사랑을 담는다. 손님들과 담소도 나누고 음악도 함께 흥얼거린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남아 있다.

“편견 갖지 마시고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가격도 싸요. 미용실 크게 만들어서 손님이 많이 와주셨으면 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 주일 미용실을 찾는 30명의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이발기.
 


가톨릭신문  2012-02-1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에페 4장 32절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