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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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를] 무국적으로 살아가는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들

태어난 순간부터 불법체류자… 인권 사각지대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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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불법체류자가 돼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 자녀 보육시설 `갈릴래아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지난해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 자녀 보육시설 `베들레헴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던 루이(가명, 6, 필리핀)양은 갑작스레 한국을 떠나야 했다.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였던 루이양 아버지가 단속에 걸려 필리핀으로 추방됐기 때문이다. 루이양 어머니도 필리핀 출신 미등록 노동자였다.

 루이양 부모처럼 취업허가 기간이 끝난 후에도 불법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은 현재 약 17만 명.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불법체류 노동자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8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등록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이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살고는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본국(부모의 나라)으로 출국시킬 수도 없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베트남인 불법체류자가 이른바 `국적세탁`을 통해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려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해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고, 한국인 `가짜 아빠`를 이용해 출생신고를 한 뒤 여권을 발급 받는 수법을 통해 아이를 베트남으로 보냈다.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예방접종 등 국가가 제공하는 다양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불법체류 부모들은 양육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돼도 대부분 학교를 가지 않는다. 2010년 현재 불법체류 노동자 자녀 중 1748명이 초등ㆍ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 나머지 6000여 명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UN(국제연합) 아동권리협약에는 불법체류자라고 할지라도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개정된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불법체류 노동자 자녀들도 초등ㆍ중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분 노출을 우려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미끼삼아 단속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여전히 단속을 두려워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다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입학 여부는 학교장 재량에 맡기고 있어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하면 입학을 허가해주는 다른 학교를 찾아봐야 한다.

 학교장들은 외국인노동자 자녀 입학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자체에 대한 거부감뿐 아니라 언어ㆍ문화 적응 프로그램과 같은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따로 준비해야 하고, 기존 학생들과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오성배(동아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2009년 `외국인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의 교육 실태와 문제 탐색` 주제 논문에서 "불법체류자 부모가 자녀 입학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지역 시민단체나 종교단체 도움을 받기 전까지 아이들을 집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이 본인 의지로 학교 교육을 거부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마저 다니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은 불법체류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학교장 허가를 받아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도 정체성 혼란, 언어 문제, 뒤떨어지는 학업 능력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자녀들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김평안(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다문화담당, 살레시오회) 신부는 "이 아이들은 한국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고국에 돌아간다 해도 언어와 문화를 전혀 몰라 이방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교회가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 자녀 보육시설은 서울대교구 베들레헴 어린이집과 마고네 공부방, 수원교구 갈릴래아 어린이 집, 인천교구 품 놀이터 등이 있다. 세 교구를 제외하고 아직 외국인노동자 자녀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교구는 없다. 이는 교구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 외국인노동자 자녀들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고, 그나마 드러난 아이들 숫자도 워낙 적기 때문이다.

 맹상학(대전교구 이주사목부 담당) 신부는 "국익에 부합하는 집단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집단은 내보낸다는 게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핵심"이라며 "현재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지원책은 풍부한 편이지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고, 숫자도 많지 않은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위한 정책은 당장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맹 신부는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종교단체와 NGO(비정부기구)가 그들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이주사목 담당자들은 정부 담당 부서에 불법체류자 아이들에 대한 현황과 그들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평안 신부는 "교회는 세상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라는 멍에를 지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자녀들을 돌볼 수 있는 사목적 대안을 하루 빨리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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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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