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협화음이 화음을 내기까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데 여기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가 많아요. 우리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줬는데 음식을 남기면 안 되겠죠?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알았죠?"
숙소에 도착하자, 오케스트라 담당 김 데레사 수녀가 한마디 했다.
늦은 밤 아이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 앞, 복도 등 숙소 곳곳에 흩어져 악기를 들었다. 짬만 나면 뛰어놀다가도 틈만 나면 녹초가 돼 쓰러져 자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연습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앞으로 있을 8차례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활을 당겼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수녀들이 기저귀를 갈아주며, 먹여주고 입혔다.
이번 무대에 함께 서기 위해 온 졸업생 전인채(마르첼리노, 21)씨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는 "사춘기 때는 수녀님들과 놀러 가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아빠 신부님(알로이시오 몬시뇰)과 엄마 수녀님께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도자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각자 손에 들린 악기를 연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이들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음역을 찾아냈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고, 바이올린 받침대로 턱 밑이 거무스름해지면서 아이들 마음은 한 뼘씩 자랐다. 음악이라는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과 호흡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들에게 악기를 들려준 건 소 몬시뇰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소 몬시뇰의 특별한 사랑은 이들을 한데 모이게 했다. 어린 나이의 수녀들은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 품에 뛰어들어 엄마가 돼줬다.
김 데레사 수녀는 "사회적 편견이 우리 아이들을 제일 힘들게 한다"면서 "아이들이 졸업 후 사회에 나가 힘들고 외로울 때 함께한 이 시간이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부(필리핀)=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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