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소년의 집 아이들, 필리핀을 가다] (1)

설립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이 묻힌 땅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부산시 서구 감천로에 있는 부산 소년의 집에 가면 수녀를 엄마라 부르는 아이들이 산다.
   `엄마 수녀`들은 손발이 닳도록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었다. 꽃처럼 풋풋한 어린 수녀들은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강해졌다. 아이들은 키가 부쩍 자랐다. 엄마들은 그 사이 주름이 늘었다.
 마리아수녀회(총원장 조덕림 수녀)가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 집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 64명과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무용부 학생 24명이 10일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수녀회 설립자 소 알로이시오 슈왈츠(Aloysius Schwartz, 1931~1992) 몬시뇰의 선종 20주기를 맞아서다. 평생 가난한 아이들 아버지로 살다간 소 몬시뇰이 묻힌 필리핀 땅에서 학생들은 현지 소년ㆍ소녀의 집 학생들과 공연을 하며,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나눴다. 이들의 동행 취재기를 4회에 걸쳐 소개한다.



 
▲ 무용부 학생들이 세부 소녀의 집 학생들과 농구시합을 벌이고 있다.
 
 
#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열매

   길은 험난했다. 자기 몸집만한 큰 악기와 북, 보면대 등을 어깨에 메고 필리핀 세부 공항으로 날아가기까지는 고됐다.

 세부 소녀의 집에 딸 3200명을 둔 이 에밀란 수녀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아이들은 습하고 후덥지근한 열기를 맞으며 소녀의 집 통학버스에 악기를 실었다.

 여학생들은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세부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활성가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하느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 거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무용부 학생들을 인솔해온 주 마르타 수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얘들아, 창 밖 좀 봐봐. 저렇게 가난한데도 참 행복해 보이지?"

 차창 밖으론 쓰레기더미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마늘을 까거나 빨래를 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가난한 일상이 스쳐 지나갔다.

 40분을 달려 탈리사이에 있는 소녀의 집에 들어섰다. 구릿빛 피부의 단발머리 여학생 2000여 명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학생들이 탄 버스가 멈추자, 필리핀 학생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목걸이를 걸어줬다. 이어 만돌린 연주로 가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불러줬다.

 석양이 내려앉을 무렵, 한국 학생들은 필리핀 아이들과 농구 시합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 아래 모인 학생들은 공이 골대에 들어갈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 세부 소녀의 집 학생들이 만돌린으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연주하고 있다.
 
 

# 불협화음이 화음을 내기까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데 여기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가 많아요. 우리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줬는데 음식을 남기면 안 되겠죠?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알았죠?"

 숙소에 도착하자, 오케스트라 담당 김 데레사 수녀가 한마디 했다.

 늦은 밤 아이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 앞, 복도 등 숙소 곳곳에 흩어져 악기를 들었다. 짬만 나면 뛰어놀다가도 틈만 나면 녹초가 돼 쓰러져 자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연습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앞으로 있을 8차례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활을 당겼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수녀들이 기저귀를 갈아주며, 먹여주고 입혔다.

 이번 무대에 함께 서기 위해 온 졸업생 전인채(마르첼리노, 21)씨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는 "사춘기 때는 수녀님들과 놀러 가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아빠 신부님(알로이시오 몬시뇰)과 엄마 수녀님께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도자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각자 손에 들린 악기를 연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이들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음역을 찾아냈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고, 바이올린 받침대로 턱 밑이 거무스름해지면서 아이들 마음은 한 뼘씩 자랐다. 음악이라는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과 호흡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들에게 악기를 들려준 건 소 몬시뇰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소 몬시뇰의 특별한 사랑은 이들을 한데 모이게 했다. 어린 나이의 수녀들은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 품에 뛰어들어 엄마가 돼줬다.

 김 데레사 수녀는 "사회적 편견이 우리 아이들을 제일 힘들게 한다"면서 "아이들이 졸업 후 사회에 나가 힘들고 외로울 때 함께한 이 시간이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부(필리핀)=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4-0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유다 1장 2절
자비와 평화와 사랑이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