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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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르포] 성남 함께하는 주부모임

“지역사회 공동선 실현 위해 함께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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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듯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차가 뒤집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 한숨 돌리려는 찰나 곧바로 내리막 비탈길과 마주했다. 이어진 골목길을 꼬불꼬불 몇 바퀴나 돌고선 기어이 차를 세웠다. 일반 승용차조차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길이었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나지막한 나무 울타리 너머로 ‘책이랑 도서관’이 너른 품을 펼쳐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든 어른들은 야외벤치에서 담소를, 아이들은 마당 곳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온 동네에 웃음 메아리를 전하고 있었다.

이곳은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이다.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 간 아이들이 몰려들기 전엔, ‘엄마’들이 ‘함께’ 모여 지역 아이들을 돌보고 자아실현을 이뤄나가는 공동육아터전이자 문화의 샘터가 된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이 공간을 운영하는 ‘성남 함께하는 주부모임’의 일과를 함께했다. 대로변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배기, 그 흔한 어린이 놀이터 하나 없이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주택만이 즐비한 이곳에 새 부활의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주인공들이었다.



‘성남 함께하는 주부모임’(회장 양희정, 이하 함주부)의 첫걸음은 1970년대로 올라간다.

성남 상대원 지역은 1970년대 조성된 공단 노동자들과 서울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강제 이주를 당한 이들이 주로 모여 살던 삶터였다. 서울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는 빽빽이 들어찬 판잣집과 소규모 공장들 사이에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만남의 집’을 마련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곳에서 각종 교육을 받고, 몸과 영혼의 휴식을 누렸다. 이후 시대가 급변,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들이 결혼해 자녀들을 낳게 되면서 이 터에서 함께하는 주부모임이 새롭게 싹을 틔웠다. 때는 1996년이었다.

정부의 주거개선책으로 판잣집은 사라졌지만, 상대원 지역에서는 여전히 주거공간 외에 문화 관련 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함주부는 ‘만남의 집’을 주부들이 자아실현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또한 여성들이 내면을 다듬어감으로써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나아가 지역사회를 위한 공동선 구현에 이바지할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했다. 특히 함주부는 문화와 교육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들이 풍요로운 감성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어린이 도서관도 마련했다.

▨ 여성들의 문화사랑방

각 요일마다 다양한 동아리 모임이 ‘책이랑 도서관’에서 펼쳐진다. 양육 노하우를 나누고 다양한 교양을 채워가는 영유아 엄마모임 ‘민들레’, 역사기행에 푹 빠진 ‘쁘니’, 엄마들의 정보력과 지적 호기심을 나날이 채워나가는 인문학과 사진, 기타 동아리. 그리고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촛불 99’와 ‘도깨비 동아리’가 있다. ‘꼼지락’은 엄마들끼리 서로 재능 기부를 통해 배움과 도움을 나누는 일종의 품앗이 동아리다. 또한 함주부는 애니어그램과 각종 체험활동 등 여성 스스로가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대 여성, 엄마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더욱 우울함을 느끼지요. 자녀들도 잘 키워야 하고, 재테크도 잘해야 하고, 남편 내조도 잘 해야 하고….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각자의 내면과 행복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무조건 희생하진 않지요. 함주부에 동참하는 이들은 ‘엄마’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고, ‘여성’이 변해야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해나가고 있습니다.”

함주부 양희정(크리스티나) 회장의 말이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그저 사람이 그리워 도서관을 찾은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처음엔 무언가를 배우려는 욕심이 앞섰지만, ‘함께’ 지내면서 점점 더 서로가 서로의 의지처가 됐다. 무엇보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여성들이 옆과 뒤도 돌아보며, 외로운 이웃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됐다.

▨ 촛불99 자원봉사단

1999년, 자신을 태워 밝은 빛을 내는 촛불처럼 이웃을 위한 나눔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뜻을 모은 이들이 ‘촛불 99 자원봉사단’(이하 촛불 99)을 발족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촛불 99 회원들의 요리솜씨며 말솜씨 등이 더욱 빛을 발휘한다. 직접 만든 다양한 반찬들을 매주 혼자 사는 어르신 30여 명에게 전달한다. 각 집을 방문할 때면 회원들은 말벗도 되었다가 가사도우미도 되었다가 간병인도 되곤 한다. 회원들이 찾아가는 어르신 대부분은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더욱 외롭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목욕과 나들이 봉사 등도 촛불 99 회원들의 몫이다.

특히 촛불 99 활동은 어르신들이 어르신들을 돕는 모습으로 더욱 눈길을 끈다. 회원들 중에는 스스로도 도움을 받아야 할 60~70대 어르신들도 많지만, 모두들 자기보다 더욱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기꺼이 마음과 시간을 내어놓고 노동을 즐긴다.

‘만남의 집’에서 봉사한 인연으로 세례를 받고, 촛불 99 발족 초기 때부터 활동에 참여해온 황금님(진이 아가타·68)씨는 “때론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이러한 희생을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선물 받은 생명의 의미를 더욱 절실히 깨닫고,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더욱 기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책이랑 도서관

책이랑 도서관에는 매일같이 30~40명의 어린이들이 북적인다. 10여 명의 ‘도깨비 동아리’ 회원들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며 책을 읽어주거나 각종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어린이 도서관은 함주부 회원들이 알음알음 기증한 책을 모아 문을 열었다. 지난 2007년엔 기업과 지역자치단체 등의 도움으로 아기자기한 다락방까지 갖춘 새로운 공간으로 꾸며졌다. 소장한 책도 우수도서 1만여 권에 이른다. 덕분에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서 단체로 견학을 오고, 책도 빌려가는 유명한 도서관이 됐다. 도서관 때문에 이사를 가지 못하는 이웃들도 생겨날 정도다.

하지만 함주부는 재정적인 한계로 인해 새로운 책을 늘려나가는 데에는 늘 어려움을 겪는다. 주5일제 수업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아직까지 실시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그나마 성베네딕도 수녀회가 무상으로 도서관 건물을 사용하도록 배려해준 덕분에 겨우겨우 버텨가는 실정이다.

현재 50여 명의 활동회원들이 매월 1만 원씩 내는 회비와 일부 뜻있는 이들이 모아주는 후원금은 도서관과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매주 어르신들의 먹거리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이다. 그래도 함주부 회원들은 늘 새롭게 선물 받는 365가지 하루를 ‘함께’ 일궈나간다.

신앙 안에서 ‘더불어’ 나누어 그 기쁨은 더욱 크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꾸려가는 삶은, 날마다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선을 밝혀가는 빛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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