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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집 아이들, 필리핀을 가다] (3)

밀알 한 알이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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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선교사로 부산에… 전쟁 고아 돌보는 데 헌신
마리아수녀회 설립… 필리핀·멕시코·브라질로 퍼져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살다 1992년 필리핀서 선종


  한국전쟁의 상흔이 서린 1957년, 판잣집과 오두막으로 즐비한 부산. 구두통을 둘러멘 구두닦이 소년들과 헐벗고 굶주린 넝마주이 사이에 젊은 미국인 신부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했던 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선교사로 부산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간 원조기관을 설립해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미국인 신부, 즉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부산 송도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설립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그의 열정은 국경을 넘어 필리핀과 멕시코, 브라질 등지로 퍼졌다. 소 몬시뇰을 따랐던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은 엄마처럼 아이들을 씻기고 먹였다. 세계 각국으로 파견된 수녀들은 현지에서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 소년ㆍ소녀의 집에서 교육시켜 사회로 내보냈다. 소년ㆍ소녀의 집을 졸업한 필리핀 학생만 5만 명이 넘는다. 소 몬시뇰의 사랑은 가난한 이들을 가난에서 구제해줬다. 또 사람들에겐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볼 기회를 줬다.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1992년 3월 16일 필리핀 마닐라 사제관에서 눈을 감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멕시코 소년ㆍ소녀의 집을 오갔을 정도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Champion of the poor)가 가난한 이들 곁을 떠난 지 20년이 흘렀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바친 열정

 3월 16일 필리핀 카비테 실랑 소녀의 집과 함께 있는 마리아수녀회 본원. 이른 아침부터 마리아수녀회 설립자 소 알로이시오 슈왈츠 몬시뇰 유해가 묻힌 경당이 북적였다. 추모예식을 위해 졸업생과 재학생, 교사 300여 명이 모였다. 마리아수녀회 한국 수녀들도 아이들을 돌보던 손을 잠시 내려놓고 필리핀으로 날아왔다. 헤수스 라냐다 몬시뇰 주례로 추모예식이 거행되고, 졸업생과 재학생 및 교사들은 차례로 헌화했다.

 추모예식이 끝난 뒤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인근 본당 및 수도회 사제 10여 명 공동 집전으로 소 몬시뇰 선종 20주기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 참례한 실랑 소년ㆍ소녀의 집 재학생 3000여 명과 한국 학생들은 소 몬시뇰의 영원한 안식과 시복시성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미사를 집전한 라냐다 몬시뇰은 강론에서 "소 몬시뇰이 선종하신 지 20년이 되는 오늘, 소 몬시뇰은 우리 가운데 여전히 살아계심을 느낀다"며 "그가 없었다면 수천 명의 학생들은 가난한 환경에서 밝은 미래를 준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냐다 몬시뇰은 소 몬시뇰 일생을 다룬 「가난한 이들에게 바친 열정」을 집필한 바 있다.

 마닐라대교구장 안토니오 타글레 대주교는 이날 미사에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넘치게 받았기에 너그럽게 나눠야 한다"며 "소 몬시뇰 가르침대로 삶을 허비하지 말고, 사랑하는 데 쓰라"고 주문했다. 이어 타글레 대주교는 "사랑스럽고 친절하며 의롭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성장해 여러분 아버지가 소 몬시뇰임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와 무용부 학생들은 미사 후 기념공연에서 오케스트라 선율과 부채춤, 난타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소 몬시뇰이 남긴 선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전날 밤, 소 몬시뇰이 묻힌 경당 앞에서 `아버지`만을 위한 뜻깊은 무대를 마련했다. 소 몬시뇰이 즐겨 부른 팝송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고향의 푸른 잔디) 등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였다. 아이들은 하느님 존재를 알려주고, 악기를 쥐어 준 아버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16일 오후에는 졸업생을 위한 소 몬시뇰 20주기 미사가 봉헌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졸업생들은 가족, 친구들과 담소를 나눴다.

 친구들과 모교를 찾은 조셉핀(29)씨는 "소 몬시뇰은 내게 `희망의 아버지`"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농사를 짓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생계에 허덕였지만 필리핀 탈리사이 소녀의 집에서 공부한 후 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엔지니어로 일한다.


 
▲ 추모예식에 앞서 헌화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필리핀 실랑 소녀의 집 졸업생들.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 이사장 정 말지 수녀는 "만약 소 몬시뇰이 다시 오신다면, 아이들이 하느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 영혼을 위해 힘써달라고 이야기하실 것 같다"며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자라 사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도록 목숨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정 수녀는 "아이들이 우리를 통해 친엄마와 같은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단원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뒤에서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본 이 안젤라 수녀는 "이 아이들이 우리 품을 떠나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소 몬시뇰과 함께 생활한 박 불케리아 수녀는 "소 몬시뇰은 가난한 아이들 영혼을 구원하려는 참된 사랑이 있었다"며 "신앙 없이는 세상살이에 쉽게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영성교육과 피정에도 힘을 쏟으셨다"고 회고했다. 박 수녀는 "특별히 가난한 아이들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는 등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하느님 사랑 알려준 아버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무용부 학생 90여 명은 마리아수녀회 본원에 있는 몬시뇰의 유품 전시관도 둘러봤다. 사진 200여 점과 미사도구, 제의, 낡은 운동화, 성직자 신분증 등 가난한 이들 속으로 자신을 내던졌던 한 사제의 파란만장하고 검소했던 삶이 유품에 그대로 녹아 있다.

 2008년 소년의 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중공업에 다니고 있는 한금록(레오, 24)씨는 "신부님이 계신 곳에 오니까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졸업생 전인채(마르첼리노, 21)씨는 "평생 받기만 하며 지내온 만큼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남모르게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달 월급의 3분의 1을 떼어 어려운 이웃에게



가톨릭평화신문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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