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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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① 생명의 원천

모든 생명의 근원, 빛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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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선(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세상이 온통 끈적거린다. 열대야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태풍과 함께 온 장맛비 영향인 듯하다. 그러나 올 여름에는 아직 비가 반갑기만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 나라가 가뭄 걱정으로 큰 시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 듯싶다.

 가뭄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연구실 창밖 화단의 영산홍 잎과 가지도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지난 봄 화려한 꽃과 이어지는 신록의 자태를 뽐내던 그 화려한 모습은 아예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끝내 말라죽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지난번 내린 비에 여러 곳이 해갈되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물난리까지 겪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영산홍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또다시 반가운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는 이제 이슬비로 변해 있었다. 비오는 이른 아침은 그야말로 싱그럽기만 했다. 시선이 문득 창밖으로 갔다. 그 때 바짝 마른 잎새 사이로 언뜻 초록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히 보니 메말랐던 가지 끝에 연록색의 가냘픈 새순이 돋고 있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생명력의 신비에 손이 모아졌다. 우주 만물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위대한 힘이 새삼 깊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이 하느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니 생물이라는 지구상의 유기체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생명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원소로 구성돼 있지만 그 구성 비율이나 방식은 무생물과 큰 차이를 보인다. 고도로 복잡하고 치밀한 구조의 한 생명체의 형성에는 지속적인 에너지 유입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성장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에너지를 떠난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에너지가 공급될 때만 생물은 자연계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성분들을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청사진에 따라 체계적 구조를 지닌 유기체를 형성할 수 있다. 한 번 만들어진 유기체가 만고불변의 상태로 그대로 존속하는 것은 아니다. 유기체 내에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어제의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지라도 실상은 어제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또 다른 유기물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도 끊임없는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 생물들은 그 에너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급받는다.

 에너지의 주요 원천은 뭐니 뭐니 해도 태양이다.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부 생물은 화합물이나 심해에서 분출하는 해저화산의 열수구로부터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이들 에너지는 일단 미생물이나 식물들에 의해 포도당과 같은 형태의 화합물에 저장된다. 즉 빛이나 열 에너지가 화학적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생물들을 생태학적으로 생산자라고 한다. 생산자에 저장된 에너지는 이들을 먹이로 하는 소비자 생물들로 전달되고, 소비자 생물들에 저장된 에너지는 세균이나 곰팡이와 같은 분해자 생물들로 옮겨가는 일종의 순환적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자연계로 다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일부는 생물의 운동 등과 같은 통상적 생명활동에 이용되며, 나머지는 유기물의 형태로 다른 생물들에 의해 이용된다.

 만약에 빛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는 순간 어둠의 세계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이며, 살아있던 모든 생명체는 생명이 없는 물체로 전락할 따름이다. 생산자를 시작으로 유기적으로 치밀하게 짜여 있던 생태계는 그 근본이 흔들릴 것이며 결국 이 세상은 죽음의 정적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근원이 빛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성경의 곳곳에서도 빛에 대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이 빛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

 신약에서 우리는 좀 더 명확하게 생명과 빛의 관계를 볼 수 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빛이 있음으로써 모든 생명의 존재가 가능함은 영육의 모든 존재 양식에 필수적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버릴지도 모르는 쌀 한 톨과 이름 모를 풀 한포기에도 하느님의 입김이 스며있다는 말씀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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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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