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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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②생명체의 시작(상)

수정란, 새로운 생명체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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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선(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과학사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눈길을 끈다. 그 중 하나는 벤젠이라는 화합물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 이야기다. 석유에 섞여 있는 벤젠은 탄소 원자 6개와 수소 원자 6개로 이뤄진 화합물이다. 이것의 구조를 밝히려 여러 화학자들이 노력했지만 그 비밀을 좀처럼 밝혀내지 못했다.

 독일 태생 화학자인 케쿨레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 구조를 알아내려 고심하던 어느 날 난로 옆에서 깜빡 졸던 그는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벤젠의 화학적 고리 구조를 밝혔다. 노벨상은 그 결과로 얻어진 부산물이다.

 일반적으로 생물은 탄생, 성장, 노화, 죽음으로 귀결되는 직선적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거시생물학 측면에서 생물의 삶은 마치 벤젠 고리와 같은 순환 구조로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생명의 영속성 측면에서 생물은 개체로서는 유한한 삶을 살지만 생식을 통해 종으로서는 무한한 삶을 사는 역설적 상황을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이라는 존재를 직선적 궤도에 올려놓고 생명체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기조차 하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생물은 아무래도 개체가 중심이 되기에 이 글에서는 개체의 형성을 중심으로 생명체의 시작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생명체의 시작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생물의 특성은 생식이다.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의 생식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수 세포로 구성되며 그 구조가 복잡한 대부분의 생물은 일단 정자 및 난자라는 생식에 특화된 세포, 즉 생식세포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합쳐지는 수정 과정을 거쳐 생명체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인간의 경우 정자 형성에는 약 65일이 소요되며 난자 형성에는 1년 이상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 수정이 될 수 있는 확률은 한 달 중 며칠에 불과하고, 많은 수 정자 중에서 단 하나만이 수정과정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수정란은 확률적으로 귀한 존재다.

 수정 과정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수정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는 생식의 목적에 적합하게 고도로 분화된 세포이지만, 유전정보의 양적 측면에서는 반쪽인 상태이다. 이들이 융합하는 수정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완전한 유전정보를 지닌 한 개체가 형성된다.

 한편 생식세포의 형성 및 수정 과정에서는 극심한 유전정보의 섞임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써 수정란은 양적으로는 앞선 세대와 동일하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단순히 합쳐짐으로써 새 생명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 전 난자의 상태는 폭풍 전 정적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 정적이 정자가 난자로 침투하는 자극에 의해 깨어지며 수정란 안에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 시작의 역동적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즉,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합쳐지고 침투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수정, 바로 그 때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가 이 우주에 처음 출현해 생애의 긴 여정을 향한 닻이 올라가는 최초의 순간이다. 즉 내적으로 완벽히 갖춰진 하느님 모상에 숨결을 불어넣으신 그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인 것이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정자와 난자가 생식에 특화된 세포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정자나 난자에 축소형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른바 전성설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개체의 발생은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는 수정에 의해 비로소 시작됨을 알게 됐고 이러한 견해를 후성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모든 동물들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단순한 모습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한 구조를 보이는 개체로 변화한다. 즉, 발생이 완전히 끝난 후 생명체 모습은 수정된 난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명의 시작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물음이 큰 논쟁거리가 됐다. 이 과정은 여러 단계로 구분되며 각 단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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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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