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생명의 문화] 생활 속 생명윤리 ③ 연명치료 중단은 안락사인가?

연명치료 중단, 안락사와 달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남명진(가천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The End of Life, Who Decides?` 2005년 4월 타임지 특집으로 실린 이 기사에는 미국 한 여성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0년 테리 시아보는 폭식, 비만 등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병원으로 실려 왔다. 소생술이 시행되어 심장과 호흡기능이 살아나긴 했으나, 뇌신경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인공튜브에 의한 영양공급에 의존해 사는 식물인간이 됐다. 그가 식물인간이 된 뒤 "아내가 식물인간인 채로 살길 바라지 않는다"는 남편 마이클과 "딸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다른 여자와 딴살림을 차린 채 그녀 재산을 노려 죽이려 한다"는 시아보의 부모 사이에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1998년 남편 마이클은 보조장치제거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6년 만인 2004년 "테리가 의식불명 상태이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정하고 튜브 제거를 허가했다.

 이후 미국 내 보수단체와 플로리다 주의회, 연방의회, 교황청,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영양공급 튜브 제거를 반대해 세계적 이슈가 됐다. 15년간 영양공급 튜브에 의존해오던 시아보는 2005년 3월 법원 판결로 튜브가 제거된 지 13일 만에 숨졌다. 안락사의 전형적인 예이다.

 2008년 2월 김 할머니는 폐암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한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 등으로 인해 심장이 정지됐다. 이에 병원은 심장마사지를 시행해 심박동기능을 회복시키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김 할머니는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이때부터 김할머니는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인공영양과 수액을 공급받으면서 생명을 유지했다.

 김 할머니의 자녀들은 병원 주치의에게 연명치료는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징후만을 단순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김 할머니가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고 밝혀왔다고 주장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했다. 2009년 6월 대법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받은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뗀 지 201일 만에 김 할머니는 별세했다.

 이 경우는 안락사가 아니다. 인공호흡기를 떼면 환자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존엄사(안락사의 한 종류)와는 개념이 다른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201일을 더 살 수 있는 환자를 두고 존엄사를 결정했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며 안락사가 당연시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이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명치료를 중단해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한 채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다.

 김 할머니에게는 영양 및 수액을 공급하고,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과 같은 의료장비가 부착돼 있었다. 대법원의 연명치료중단 판결로 김 할머니에게는 영양 및 수액 공급이 유지된 채 인공호흡기가 끊어진 것이다. 만약 영양 및 수액공급을 중지하면 안락사가 되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테리 시아보 경우가 영양공급 중단에 의한 안락사이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인위적 치료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대로 의료진은 호흡보조용 관을 끼우지 않았다. 연명치료 중단인 예이다.

 김 할머니 이전에는 통상 임종단계로 들어선 환자가 인공호흡기ㆍ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한다는 뜻으로 광범위한 의미의 존엄사라는 말을 쓰기도 했으나 김 할머니 이후에는 직접 죽음과 연관되지 않은 결정에도 존엄사라는 용어를 쓸 경우 존엄사가 남용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존엄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위한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법안까지 만들었지만 존엄사라는 말이 들어가 반대에 부딪쳐서 법제화 작업이 진행되지 못하기도 했다.

 한발 나아가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본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이 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해, 또는 의료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환자를 물적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존엄사라는 용어는 인간을 존엄하게 보호하기보다는 안락사를 부추길 수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10-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9

루카 1장 38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