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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활 속 생명윤리 ④ 유전자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가?

인권침해 도사리는 유전정보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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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진(가천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머리카락 다섯 올만으로 우리 아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더욱이 나와 나의 배우자에게 찾아올지도 모를 질환까지 예견할 수 있다면, 만약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인생의 걱정거리 중 많은 부분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바탕이 좋지 않더라도 미리 알고 대비하면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피하고, 결국에는 성공과 장수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토정비결이나 사주팔자, 관상, 역학 등 비과학적 방법에 의지해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알고자 하는 이유도 모두 이같은 소망에서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예측 불허의 미래는 `예상 가능한 현실`로 바뀐다고 기대하고 있다. 민족마다, 사람마다 고유한 유전자의 정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그 사람의 체력, 성격, 특기, 적성, 걸리기 쉬운 질환 등을 미리 알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자검사에 의해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근이영양증을 비롯한 139종의 유전질환에 한해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유전자검사를 통해 유전자 이상 여부를 알게 됐더라도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 특히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유전적 이유의 낙태가 합법이다. 그래서 유전자검사가 낙태를 더욱 더 부추기는 것이다. 유전자검사 결과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유전질환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보호하고자 제정된 생명윤리법이 낙태유발법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부쩍 증가한 성폭력범 등 강력범을 조기에 검거하고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이 제정돼 운영되고 있다. 이 법은 강력범죄인 살인, 강도, 강간ㆍ추행, 약취ㆍ유인, 체포ㆍ감금, 상습폭력, 조직폭력, 마약,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 예를 보면 유전자검사가 어떻게 남용되는지를 알 수 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씨, 천씨, 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DNA를 채취당했다. 2009년 8월 있었던 쌍용자동차 사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사측의 일방적 해고로 인한 생존권 위협에 처한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파업을 벌였고, 이에 맞서 쌍용자동차는 직장폐쇄를 단행해 결국은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다수가 죽거나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서씨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형이 확정됐다. 그래서 DNA를 채취당했다.

 김씨, 천씨, 김씨에게 인정된 채취대상 적용 법은 폭력행위처벌법이다. 이들은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재개발에 항의하기 위해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생존을 위해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강력범죄인이 아니다. 또 이들이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도 없다.

 서씨의 경우도 퇴거불응 그 자체를 강력범죄로 보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나올 정도이니 그 당시 상황이 긴박하고 위험했으며 인권침해가 심각했을 것이다. 서씨의 법위반은 생명과 신체 안전이 위협당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서씨에게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는데,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그 죄가 상대적으로 중하지 않고, 재범의 위험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서씨의 DNA를 채취하는 것은 법의 남용이다.  

 DNA가 채취돼 유전자검사가 이뤄지는 순간 앞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사회적 병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즉 이런 검사에 의해 문제인이라는 꼬리표를 부여받게 된다. 사회적 차별이 시작된 것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된 이후 20세기 초 우생학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자에 의해 인간 형질이 결정된다고 믿고, 나쁜 유전자와 좋은 유전자를 구별하고 나쁜 유전자의 전파를 막으려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던 유명한 가계 자손들이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터키인, 유태인, 아시아인, 흑인과 혼합되어 순수성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른 배경을 가진 집단이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려 했다.

 이러한 운동 결과로 이민 제한과 강제불임이 실시됐다. 그러나 그 후 각각의 유전정보로 개개인의 능력과 미래가 예견될 수 없음이 밝혀졌다. 개인의 유전정보가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에 관해 충분히 논의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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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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