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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활 속 생명윤리 ⑤ 태아의 죽임이 없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태아=사람'' 망각하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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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진(가천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태아의 죽임이 인간의 권리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서구에서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권리와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돼 왔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은 전 세계적 논란을 일으켰다. 연방대법원은 수정 12주 이내에는 산모의 이익이 태아의 인권보다 앞선다는 판결로 임신한 독신녀 로우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이 사건은 낙태 허용의 빌미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부터 인구를 줄이려 가족계획을 채택, 산아제한을 하면서 낙태가 성행했다. 1973년에는 공식적으로 모자보건법을 제정해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천주교회에서는 인위적 산아제한 정책을 반대하며 낙태반대운동을 벌여왔다.

 1994년 낙태반대운동연합은 생명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생명선언문은 "첫째, 낙태는 살인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낙태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셋째, 매일 4000명 이상의 태아가 죽임을 당하는 이 참담한 현실은 정부의 왜곡된 가치관과 잘못된 인구정책의 소산이다. 넷째, 사법당국은 낙태문제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즉시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 의료인들은 종래의 반생명적 의료행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날마다 수천 명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으면서도 낙태죄로 기소된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정부와 사법부에서 암묵적으로 낙태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를 묵인하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종교계 사이에 갈등이 지속돼 왔다.

 2010년 뜻있는 산부인과 의사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적으로 낙태를 자행하는 의사를 고발했다. 이 고발로 인해 의사가 처벌당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파장은 컸고 불법 낙태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낙태를 반대하며 낙태예방을 위한 단체인 프로라이프 변호사회, 프로라이프 청년회, 프로라이프 교수회 등이 결성됐다. 이어 이 단체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연합회가 주최한 생명대행진이 지난 6월 열렸다. 생명의 고귀함을 외치고 이 사회에 태어나지 않고 사라지는 영혼들이 더 이상 없길 간곡히 바라면서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행진에 참가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1월 23일 워싱톤 국회의사당 앞에서 39번째 생명대행진이 있었다. 역대 최다 인원인 50만 명이 전국 각지에서 집결, 소리없는 태아의 소리를 대변했다. 이번 행사엔 25살 이하 젊은층과 여성들이 주류를 이뤘다. 1973년 1월 23일은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사실상 허용한 날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날 "낙태는 태아와 여성을 향한 폭력이다"는 사실을 외친다. 이 운동 결과로 미국은 낙태 문제를 연방법으로 다루지 않고 주법으로 다루도록 바꿨고, 해마다 낙태를 규제하고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들이 개정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사회는 왜 그렇게 낙태가 성행할까? 과거에는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는 당위감이 작용했다. 지금은 아들을 선호하거나, 터울이 많이 떨어져 있거나, 미혼이라는 게 이유다. 태아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개인적 편리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아는 `필요없는 것`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몸에서 혹을 떼듯 제거하면 만사가 편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에서 태아를 `제거하면` 편해질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는 게 인간생활 법칙이다. 지금 이 사회는 혼돈을 겪고 있다. 편리함을 위해 태아의 생명을 제거하는 행위 등이 결과적으로 이런 현상을 불러오지 않았겠는가.

 우리사회에 만연해진 자살과 이혼 현상 역시 달리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을 경외하지 않고 만만하게 보고 있는 우리들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산모와 주위 가족들의 편함과 이기적 목적 달성을 위해 자행한 낙태는 결과적으로 물질만능 사회, 악해지는 사회 현상을 불러왔다.

 생명을 무엇으로 보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인과응보의 사회법칙에서 보더라도 이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가져오는 것이 낙태의 결과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쉽게 떠난 태아를 위해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태아의 영혼이 부모의 공양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삼도천을 건너 불계에 가게 하려는 것이다.

 낙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살아가는 아픈 상처다. 또 낙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강자 인간이 약자 인간에 대한 살인 행위이다. 무엇이 바른 길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낙태없는 사회가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유토피아 세상이다. 낙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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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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