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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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환자를 통해 본 의료 윤리 ① 의학의 발전, 교회의 생명윤리와 인간의 존엄성

혼자 겪는 장애아 출산 산모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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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기술이 향상돼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들로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유전질환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증상들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사망에 이르게 돼 유전병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셋째 아이를 임신한 A씨가 태아에 대한 산전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필자의 진료실을 방문했다. A씨의 둘째 아이는 선천성 면역결핍질환을 갖고 태어나 출생 직후부터 폐렴, 설사, 뇌막염, 간농양 같은 감염증을 심하게 자주 앓아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다가 결국 4살이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4년이란 짧은 생의 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내다 엄마 곁을 떠났다.

 고열과 함께 눈도 크게 뜨지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는 아이를 지켜봐야만 했던 기억은 A씨를 괴롭혔다. 특히 선천성 면역결핍증이 자신을 통해 유전됐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젊은 가장의 수입으론 네 식구 살기도 빠듯하다보니 둘째 아이 치료비의 상당부분이 빚으로 남았다.

 그런 중에 뜻하지 않게 또다시 임신을 한 것이다. A씨는 고심 끝에 태아의 선천성 면역결핍질환 여부에 대한 산전 검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불행히도 태아는 둘째 아이와 동일한 면역결핍질환을 갖고 있었다. 축 처진 어깨로 진료실을 나서는 A씨의 뒷모습을 보며 현재 의료 수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어 가슴 아팠다.

 A씨와 같이 유전병을 가진 아이를 낳아본 산모는 다시는 동일한 병을 가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산모는 임신 중에 태아 산전검사를 받고, 병이 있음이 확인되면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

 산모 A씨의 경우 태아가 유전학적 신체 질환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낙태는 합법적이며, 법적으로 산모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 그러나 산모의 선택권 존중은 생명체인 태아를 제거하는 동일한 행위가 법률적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합법 또는 불법이 될 수 있는 모순을 낳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낙태는 옳지 못한 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한 사람의 생명이 시작되며, 이 생명은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임신의 지속이 산모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유전질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치료법` 등이 연구되고 있으나 실용화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유전질환이 왜 발생하며, 어떻게 미리 진단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다.

 의학의 발전은 예전 같으면 자연도태 될 많은 생명을 생존가능하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이와 가족의 삶의 질을 낮추기도 한다. 교회 가르침을 잘 알고 있는 필자가 가톨릭 신자로서 매번 낙태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산전 검사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고, 또 산모가 낙태를 선택할 때에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죄의식이 밀려올 때도 있다.

 낙태를 선택한 산모도 그 낙태가 합법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특히 산모가 가톨릭 신자라면 그 마음은 더욱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산모에게 주어지는 고통 모두를 산모 개인에게 짐 지우는 게 현실이다. 산모가 유전적 장애아를 낳아 힘들게 키우는 과정을 가까이서 많이 봐 온 필자로서는 태아 생명의 신성함 또는 태아 생존권만을 강조할 수 없었기에 낙태에 대한 산모의 선택을 자신있게 막지 못했다.  

 지금과 같이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낙태를 하면 안 된다는 교회 가르침만을 유지한다면 낙태를 택한 산모에게 또 다른 마음의 고통을 주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장애아를 낳아 혼자 키워야 한다는 산모의 두려움과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종교적 또는 윤리적 설득과 격려가 필요하다. 동시에 산모의 짐을 사회와 교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다행히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서울성모병원이라는 첨단 시설을 갖춘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이 있다. 전국에도 여러 성모병원들이 있다. 일반 병원들이 병원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진료를 성모병원이 전문성을 갖춰 제공한다면 산모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그리고 태아에게는 생명을 줄 것이다. 또 낙태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해소될 것이고, 필자와 같이 죄짓는 마음으로 진료하는 의사도 없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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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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