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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무익한 연명치료 중단 ① 이것은 의미가 없는 치료입니다?

연명치료의 의미, 누가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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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민(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일주일째 입원 중인 김 할머니를 돌보는 딸들은 요즘 고민에 잠을 못 이룬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절로 나올 때도 있지만, 눈물의 자리를 이렇게 큰 한숨이 차지하게 될지 몰랐다.

 의료진은 할머니가 깨어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암이 전신에 다 퍼져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치료방법도 없다. 결국 극심한 통증 속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딸들은 한숨만 푹푹 나왔다. 게다가 입원비로 큰 비용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10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의원의 주장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년도 의료 수가 협상의 조건으로 대한병원협회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시했고 이러한 목표가 달성될 경우 인센티브까지 지급하겠다는 사실이 밝혀져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생명 윤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임종 시기의 치료 결정`을 의료비 재정 절감을 이루려는 조건과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에 비윤리적 처사라는 비판이 바로 제기됐다. 이에 `만성질환 예방과 건강한 노후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으로 급히 수정되며 이 파장은 일단락 됐다.

 어떤 행위가 의미가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더구나 그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일 경우 더 어렵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 논의와 의료계(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의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의학적 지침`에서도 나타났듯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치료의 대상, 종류, 절차 및 치료 중단 인정 여부, 요건, 절차 등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무의미한` 대신에 `무익한`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다. 과연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해당하는 것일까?  

 전쟁 중 북에서 혼자 내려온 김 할머니에게는 남편과 딸 셋이 전부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셋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집을 나가 먼 도시에서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큰 배신감과 화를 뒤로 하고 할머니는 수산 시장에서 억척같이 일하면서 20년간 혼자서 딸 셋을 키웠다. 혹시나 딸들 앞날에 누가 될까 남편과의 호적정리도 하지 않았다.

 딸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딴 살림에 실패한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용서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첫째 딸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존재는 없는 것보다 나았고, 남편은 조용하고 성실하게 집안일과 시장 일을 뒷바라지 해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편이 다시 돌아온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을 마음에서부터 받아들이고 용서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중이 줄고 피곤해 받은 검사에서 암이 불현듯 발견돼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참회하듯 한결같이 옆에서 병수발을 들어줬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이제 항암화학요법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말기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병의 진행 상황 상 적어도 몇 개월은 더 남아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정도 기간이면 삶을 마무리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갑자기 사래에 걸려 숨쉬기가 어려워지며 의식을 잃었다.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는 바람에 폐렴이 심해져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비록 지금 할머니의 병세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할머니에게는 말없이 병상을 지켜주던 남편에게 아직까지 하지 못했던,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말이 남아있었다. 두 손을 꼭 맞잡고서 남편에게 이 말은 전해야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중있을 것 같았다.

 "괜찮소. 나 이제 다 괜찮소. 마음에 진 짐, 다 내려놓고 사시오. 그동안 옆에서 지켜주어 고맙소. 정말 고마웠소. 우리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웃으며 만납시다."

 임종 시기의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며 무익한 연명치료처럼 보인다고 할 지라도 필자는 의사로서 김 할머니의 중환자실 치료를 끝까지 고집할 것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김 할머니와 두 손 꼭 맞잡은 할아버지,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딸들의 모습을 꼭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일생을 관통하는 그 순간에 담겨 있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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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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