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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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무익한 연명치료 중단 ③ 그것까지 결정의 대상은 아닙니다(사전의료지향서의 한계)

환자 존엄성 침해하는 선택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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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민(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급작스런 의식 소실로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수년 전에 아버지가 사전의료지향서라는 것을 작성해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 김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자녀들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분이 예전에 작성해놓으셨다는 사전의료지향서를 받아본 의료진들도 그 내용을 보고서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 김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처치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내렸지만 과연 이를 시행해도 되는 것인지 머뭇거려졌다.

 예전 같으면 이런 환자분의 상황이라면 당연히 시행하고 그 반응 및 효과를 살펴보면서 조절해야 하는 의학적 처치도 사전의료지향서의 내용에 따르면 시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를 봐온 경험, 의학적 지식 및 전문 역량은 무시된 채 환자와 보호자 개개인의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존재가 돼버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의료진은 자괴감까지 느끼게 됐다.

 만일 나의 가족이 이런 상황이었다면 시행하지 않을 여러 의료 행위들이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에 의해서 행해지거나, 그 반대로 시행해야 할 의료 행위는 시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가 과연 환자가 표명한 내용의 단순 집행자가 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사전의료지향서에서 중요한 문제점은 환자가 치료 결정 과정에 과연 개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요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환자의 죽음이 임박했거나 치료법이 환자의 생명을 고통스럽게 연장시키거나 심지어 어떤 질병을 유발하는 등 환자가 불균형적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그 치료법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구체적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어떤 치료가 그 자체로 불균형적이라 판단할 수는 없다. 또 정상적 돌봄과 통증 완화 및 수분, 영양 공급 등은 결정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포괄적 지침은 치료 집착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임상 현장에서 무엇이 정말 치료 집착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고도의 전문적 역량과 중립적 환경이 요구된다.
 
 사전의료지향서는 구체적 상황에 처하기 전에 나타낸 의사 표현으로, 현실 상황이 아닌 추상적 상황에 의거하는 것이기에 현실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신뢰도가 낮다. 미리 고려해둔 중요한 상황이 실제로 닥쳤을 때 환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 대리인의 역할 설정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대리인이 과연 환자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으며 의료 행위가 대리인의 해석에 좌우되도록 맡겨두어서만은 안 된다.
 
 사실상 환자의 의사를 사전에 미리 표현해 놓는 최선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오히려 사전의료지향서는 그 본성상 무익하고 비현실적이며 모호하다. 임종 순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개인적인 선이자 사회적인 선이며 인간의 존엄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임종 순간의 존엄성을 현실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대안적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는 의료진과 환자 관계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는데 환자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의료진의 의학적, 윤리적 견해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이다.

 의료진이 환자와 좋은 관계를 이뤄 환자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하며, 환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고 환자에게 현실적인 의료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심화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외에 사회적으로는 효과적인 가정 간호 체계를 마련하고, 경제적 지원을 비롯해 환자의 가정을 위한 지원 정책을 확대하며, 호스피스와 장기 요양소를 확충하고 완화 의료 체계를 마련하는 등 사회적 연대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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