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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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명, 다르게 보기 ②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작아져야 너를 사랑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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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순(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색이 되어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병원까지 어떻게 달려왔는지 모른다. 의사는 위급한 상황은 면했으나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핏기 없이 잠든 아이의 얼굴은 오히려 평안해 보였다.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아들은 자살을 시도했다. 아들은 유서에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썼다.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 도움도 못돼서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아이는 가끔 사고를 치곤 했다. 다혈질적이고 성격이 급해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주먹질을 해대곤 했다. 덕분에 그녀는 자주 학생부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때론 아들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아이의 성적은 기복이 심했다. 공부 좀 하면 올라가는데도 공부에는 도무지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게임에만 열중했다. 이런 아들에게 남편은 가끔 심하게 화를 내곤 했다. "야 인마,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뼈 빠지게 일해서 학원비 대주니까 성적이 고작 이거야? 너 과외비로 얼마나 나가는지 알아? 이따위로 할 거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워!"

 그녀 역시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주로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숙제 다 했니?" "문제집 다 풀었어? 가져와 봐." 아니면 "영어 다 외웠어?" "학원 가야지!" 아이가 학원 가기 싫어하면 "그러다 대학 못 가면 뭐해 먹고 살래?"하며 아이를 위협했다. 남편도 그녀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요구했지, 아이가 뭘 원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즉 자신들의 가치관을 밀어붙였지, 아들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아들이 종종 방문을 걷어차고 벽에 머리를 박아도 사춘기니까 그러려니 했지 설마 이런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창백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아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둑한 병실에서 그녀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후회가 가슴을 짓눌렀다. "너를 사랑하기 위해/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정호승의 시 한 구절이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았다.

 그녀는 뒤늦게야 아이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의 퇴원과 함께 그녀의 태도도 바뀌었다. 아이의 삶을 주도하려 했던 지난날의 삶의 태도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아이의 뒤를 지켜주는 어머니로 탈바꿈한 것이다. 비록 한 발짝의 거리 조절이었지만 아이와 그녀의 삶은 백 퍼센트 달라졌다. 그녀가 주도적인 엄마에서 보조적인 엄마로 태도를 바꾸자 아이는 오히려 점차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잘해나갔다.

 부모가 자식의 곁을 지켜주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 발짝 앞서 가는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아이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해주고 따라오라고 하며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만 여기에 아이의 삶은 없다. 둘째는 아이 옆에서 함께 걷는 유형이다. 숙제도 해주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해준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부모가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의존형이 된다. 셋째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유형이다. 이 경우 아이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느라 더디지만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자라난다.

 그녀는 아들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세 번째 방법으로 생각을 바꿨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모두 내려놓은 채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만 도왔다. 그 결과 그녀와 아들은 시끄러운 말다툼과 신경전이 계속되는 불편한 관계에서 조용하고 다정하고 포근하고 살가운 관계로 변했다. 만나면 서로 웃고 행복하고 웃음꽃이 피는 가정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레비나스에 따르면 아이는 내가 죽은 후에도 미래를 살아갈 또 다른
나의 분신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쉽지 않고,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를 나에게로 동일화하려는 속성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녀는 아이가 스스로 분리되어 나가는 아픔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내가 죽어야 네가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내 방식의 사랑을 포기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저 지켜보다 필요할 때 돕는 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든 것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의 사랑만 강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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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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