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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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13> 인간과 모든 생명체 존중 봉사할 책임

인간, 모든 생명 주도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할 의무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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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자료검색을 하다가 TV 의료 드라마 `골든타임` 누리방에서 의미심장한 댓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요즘은 자기 자신을 책임지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한 몸을 책임진다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 힘겨워하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일이 버거워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이 필요한 일들은 많아졌지만 `책임진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임진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두고 `허세가 심하다`고 평가할 정도니 시대가 사람들을 겁쟁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양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어떤 부분이 남의 책임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생명봉사자 : 사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말씀하실 때마다 부담스럽습니다. 내 한 몸도 버거운데 어디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요. <<인간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신성한 가치>>(2항 §2)와 그 엄중함 때문이겠지요. 나이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질수록 높아지는 그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사전적 의미를 보면 `책임`은 꾸짖을 책(責)에 맡길 임(任)자를 쓰며, 첫째, 도맡아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뜻하고, 둘째,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를 뜻합니다. 통상 둘째에 더 마음이 가지요. 연대책임을 지다,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묻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다 등의 예문으로 보건대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물어내고 파산하고 사퇴해야 하는 `책임`을 맨 정신으로 자청하기는 누구나 어렵고 두렵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어로 보면 제법 달라집니다. 영어 `responsible`(책임있는) `responsibility`(책임성)는 라틴어 동사 `respondere`(응답하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 인간이 `respond`(응답하기)를 하는 것이 `responsible`(책임지는) 것입니다. 생명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도하심에 대한 부응(副應)일 것이기에 `책임지는`이란 의미는 그래서 `긍정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기에 <<인간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39항 §1)고 명백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그 한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후대 입법에서 드러났고 산상설교에서 완전하게 제시된 것처럼 <<육체적 생명의 불가침성에 대한 존중>>(40항 §2)을 하면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이니, 우리는 `갑`이신 하느님의 권능에 `응답`하는 `을`이면 충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능력도 없는 `무책임한 책임`, 권한도 없는 `무늬만의 책임`을 스스로 주장하면 안되겠습니다. 과장된 책임감은 `진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속임수`에서 나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윤리적으로 합당한` 도움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은 `최소한의 품위`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 `responsible`한 선택, 그리고 참으로 `응답하는`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 교황님께서는 <<온 세상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확인해주시면서 동시에 `도덕적인 생태학적 책임`도 강조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하느님께서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과 생명을 위해 봉사하도록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42항 §2). 그리고 인간이 오직 인간만을 위해 창조되었음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하느님의 주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 생명 그 자체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특별한 의무 안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43항 §1).

 다음에는 `태아의 생명과 노년의 고통`에 대해 더 다루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는 「생명의 복음」 본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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