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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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14> 인간 생명은 시작부터 하느님 계획

교회는 태아 생명 존중, 노년을 위엄있고 존경받는 시기로 바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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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로열 베이비`, 영국 왕실의 아기가 지난 7월 22일 최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온 집안과 영국시민, 심지어는 미국인들도 기뻐했답니다. 이미 입덧 때부터, 그리고 임신 6개월 때 산 파란색 유모차를 통한 아기 성별 추측 기사에다 합성된 아기 얼굴 예측 사진까지 나돌아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부담스러워하는 우리네 처지에서 참 반가웠습니다. 잘 자라나 세상 공동선에 크게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봉사자 : 태중 아기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되나요?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 생활을 지배하기에 중요한 것임에도, 안타깝게도 법은 이중적 태도를 취합니다. 기본법인 형법은 `모든 낙태`를 `범죄`로, 특별법인 모자보건법은 `거의 무제한적 낙태`를 `합법`으로 규정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람`이려면 임부의 진통이 있어야 하고 태아의 신체 일부가 노출되어야 하기에 태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민법상으로는 엄연히 `상속권`도 보장받고 있습니다. 결국 태아에 대한 피해보상은, 거칠게 말하자면 변호사의 능력에 좌우된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은 그렇지만,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에게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하느님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44항 §3). 신약의 계시는 더 극적입니다. <<동정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그들의 태중에 있던 두 아기들의 만남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지니고 있는 인격적 가치가 찬미됩니다>>(45항 §1).
 
 ♂♀생명봉사자 : 노년의 생명과 고통은 어떻게 평가되는지요?
 성경의 계시가 노년의 처지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훌렁` 내다버리도록 하지는 않았습니다. <<성서가 놓여 있는 문화적, 종교적 배경은 그러한 유혹들에 물들지 않은 것입니다>>(46항 §1). 오히려 <<노년은 위엄을 지닌 시기이며 주위의 존경을 받는 시기입니다(2마카 6,23 참조)>>(46항 §2).

 병자들의 치유이적을 봤을 때 예수님은 육체의 병과 고통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육체적 생명이 절대적 선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더 큰 선을 위해서 그 생명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47항 §2). 요한 세례자도, 스테파노 부제도 그랬지만 특히 예수님께서는 기어이 당신 자신을 성부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개인적 이익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해 "살인하지 못한다"(탈출 20,13; 신명 5,17)고 하지만, 동시에 "새 마음"(에제 36,25-26; 예레 31,34 참조)을 언급합니다. <<이 "새 마음"은 생명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참된 의미, 말하자면 생명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온전히 실현되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고 성취하게 해줄 것>>(49항 §2)입니다. 그것은 신약에 있어서 예수님의 "새로운 법"이고, "성령의 법"이며 <<벗을 위해 당신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요한 15,13 참조)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49항 §3)인 것입니다. 그것의 가장 결정적 행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인데, 교황님은 `숨 거두신 것`이기보다는 `성령을 주신 것`이라고도 해석해주십니다. <<숨을 "거둔다"는 것은… 또한 "성령(숨)을 내어주심"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51항 §2).
 
 마무리하며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고 싶다는 제멋대로의 결단에 의해 지난 4월에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고 엄마가 됐다."

 임박한 `로열 베이비 탄생`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외신이 일본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안도 미키의 `조용한 출산`을 전하며 한 말입니다.

 "제멋대로의 결단"이란 표현은 현역 운동선수로서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의미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의 결단"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책임있는 부모의식`(responsible parenthood)를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 >>는 「생명의 복음」 본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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