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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금-죽음을 준비합시다] (3) 그리스도교 내세관

하느님과 일치, 천국을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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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생전 하느님과의 관계에 따라 천국이나 연옥, 또는 지옥이라는 상태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림은 교황청 시스틴경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미켈란젤로 작품, 1537~41년).
 


죽음 이후 세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죽음을 준비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내세가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만다면 그보다 더 허망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세에 대한 이해가 죽음 준비 교육의 관건인 셈이다.

 세상 모든 종교는 내세를 인정한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죽음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영원한 생명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시간이므로 적극 준비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죽음관이다. 죽음 이후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죽은 후에 세 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에 처하게 된다.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거나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천국) △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연옥)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거부한 사람은 영원한 벌을 받는다.(지옥)

 이처럼 개별 심판(사심판)을 받은 인간은 세상 종말이 오면,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모두 부활해 최후 심판(공심판)을 받는다. 이때 육체와 영혼이 영광스럽게 된 의인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단죄를 받게 된다. 종말의 시기와 방법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천국과 연옥, 지옥을 인간이 죽은 뒤 심판을 받고 들어가는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공간적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따른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스도교 내세관을 현대적 관점에서 좀 더 풀어보자.

 인간은 죽어서 하느님과 만난다.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가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것을 체험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노라마처럼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심판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연옥은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후회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대면하는 정화의 과정이다. 생전에 죄를 지은 것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가 바로 연옥이라는 것이다. 연옥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고 정화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기대어 하느님과의 일치, 즉 천국을 희망한다. 교회는 연옥 영혼이 최후 심판 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바쳐온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이다. 연옥 영혼들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의 기도와 미사, 선행 등으로 도움을 받는다. `통공`(通功) 신앙이다.

 천국, 곧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 복락을 누리는 어떤 곳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불러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는 "천국은 추상적 개념이나 구름 위에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인격적 관계이며, 현세에서도 성찬례와 자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내맡기고 하느님을 철저히 따르며 살아온 사람은 죽는 순간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다. 이것이 천국이다. 이런 천국을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고 이웃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통해 현세에서도 미약하나마 맛볼 수 있다.

 반면 지옥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이웃을 거부한 인간이 절망과 악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흔히 지옥 형벌은 불로 묘사되는데, 이는 하느님을 거부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 현대 신학자들은 현세에서 천국을 맛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지옥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후 심판, 즉 종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기에 인간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종말 때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천국과 지옥이 내세의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라고 한다면 천국과 지옥은 이미 현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종말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하느님을 만날 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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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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