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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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불임부부를 위한 인공임신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 (4)인간배아연구

구인회 교수(가톨릭대 생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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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를 연구용으로 사용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배아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길목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입각해 생각해야 한다. 배아의 존재규명은 배아의 법적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은 수정돼 자신만의 유전인자가 확정되는 순간부터 바로 시작돼 평생 이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현행 생명윤리법은 임신 목적으로 체외에서 생성된 잔여배아를 부모 동의를 얻어 연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배아는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니라 인간개체로 성장할 수 있는 인간생명체다. 배아가 단지 잠재적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 해도 배아를 사물화하여 함부로 실험하고 폐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며, 인간에 준하는 존엄성과 생명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 생명권은 그 존재의 초기 단계일지라도 계산의 대상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 배아 편에서는 다소간 견딜만한 제한에 관한 일이 아니라, 존재 전체에 관한 일이다.

 수태 결과가 비록 하나의 인간인지 아닌지 확정지을 수 없는 그러한 경우에도 감히 살인을 감행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죄임이 도덕적 관점에서 확실하다. 잡목 속에 움직이는 것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 사냥꾼은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배아가 인격체라면 그것은 생명권이라는 가장 기본적 권리를 가질 것이다. 만일 인격체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것은 인격체에 이르는 통로일 것이다.

 과거에 수정란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인간은 수정과 동시에 삶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의 배아로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고서 지금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배아는 성숙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권을 지닌다고 봐야 한다.

 인공수정 후 잔여배아는 냉동상태에 있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어차피 자연적으로 죽거나 폐기될 운명이므로 난치병 치료 연구를 위해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냉동잔여배아가 현실적 여건상 체외에서 자연적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자연사하기 전에 실험 대상으로 삼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전혀 의미가 다르다.

 배아 입장에서도 결코 그러한 죽음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자연사를 선호할 것이다. 그보다는 이를테면 입양 등의 방법을 통해 최대한 배아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미 태어나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우리 입장에서 배아 생존이 달린 연구에 대해 논할 것이 아니라, 배아 입장에서 우리가 만일 초기 배아라면 어떠한 대우를 받기를 바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명 자체와는 무관한 다른 사람들 이익과 견주어 배아 생명권을 저울질함은 임의적 불평등한 대우이다.

 또 배아가 모체 내에 있는 경우에만 성장 발육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인간생명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같은 배아임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 있는 배아는 함부로 다뤄도 되는 단순한 세포덩어리이고 모체 내에 있을 경우에만 인간이라는 생각은 인간 정의를 위치나 환경에 따라 달리 규정하는 모순된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모체 내에 있든 체외에 냉동 보관돼 있든 배아는 동일한 인간 생명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타인 선택에 따라 자궁에 이식 여부가 결정되고 그 결과배아 생명이 보호되기도 하고 때로는 파괴되기도 한다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오히려 모체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잔여배아가 모체에 이식된 배아에 비해 보호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실험에 이용되는 배아들은 미래의 특정한 몇몇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를 그런 불확실한 과학연구를 위해 희생된다.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길이 없는 무고한 배아가 살해되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는 선행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로 간주되지만, 다른 가치와 상충되거나 피치 못할 경우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절대적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생명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불가해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 도덕원칙이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인위적 조작으로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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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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