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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 (4) 생명과학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소명

''생명의 우선성'' 선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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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사회에서 사람들은 경제적 이득과 효용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정작 생명과 같은 근본적 가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국익`의 이름으로 `윤리`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하면, 생명과 같은 근본가치도 협상 가능한 것 혹은 희생될 수도 있는 상대적 가치로 여기기도 한다. 더욱이 현대 사회의 세속주의는 이러한 가치혼돈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각종 위원회에서 윤리문제를 논의하다고 보면, 필자는 보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생명은 어느 경우에도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하는 자유주의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그러한 가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결과적 이득을 위해 타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생명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려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정당한가? 사실 답변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배아연구는 생명체인 배아를 직접적으로 파괴해야만 하는 심각한 윤리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생명체를 해치는 배아연구는 정당하지 않다.
 그러면 사람들은 "치료제 개발을 하지 말라고요"하며 질문을 퍼붓는다. 그리고는 "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하는 논쟁으로 넘어간다. 생명의 시작에 관한 논쟁에서는 원시선, 쌍둥이화 현상, 뇌 형성 등과 같은 분화, 발생과정에서 보여주는 외적 현상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인간이 어떠한 기능을 보여줘야만 인간이 된다는 모순을 내포한다. 인간이 기능에 의해 판단된다면 장애인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이 어떤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생명보호권리는 상실된다는 말인가? 중요한 것은, 배아의 생명권에 대한 논의는 발생학적 현상보다는 더 근원적 질문, 즉 근본적 가치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생명은 단순히 발생학적 현상이나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떠보려고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마태 19,3)하고 질문한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하는 것은 그 당시 사회에서는 흔히 허용됐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현실적 질문에 대해 직접적 답을 보류하시고 더 본질적 차원으로 들어가도록 초대하신다. 즉,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는지를 진지하게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신다. 마찬가지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반논쟁도 생명의 시작에 대한 현상론적 문제보다는 생명에 대한 더 근원적 질문으로 먼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현대인은 세속주의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실존이 지닌 `초월적`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인간존엄과 생명의식마저 실종하게 됨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세속주의는 배아연구, 낙태, 안락사 등에서 보듯이 경제효율성 혹은 사회유용성의 이름으로 생명을 `살아내야 하는 최우선`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선택의 대상으로 왜곡하고 있다.
 필자는 생명이 상황에 따라 양보되고 타협될 수 있다고 보는 윤리상대주의에 반대한다. 세상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근본선(basic good)이 있다. 이는 어느 가치보다도 상위 가치를 가지는 근본적인 것으로써, 생명은 대표적 근본선이다. 따라서 무고한 생명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행위는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과거 예언자들은 늘 세속적 관심에 밝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어떠한 반대와 타협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소명을 다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 하는 신앙적 확신이다. 확신이 있다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사회유용성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생명의 우선성을 선택해야 한다.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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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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