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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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우리 선조들의 생명존중 ① 구비전승에 나타난 생명존중

''고수레''와 ''까치밥''에 깃든 생명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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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윤리학자들은 물질문명과 소비문화로 점철되는 죽음의 문화에서 자연과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주장한다. 그들은 자연을 물질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인식한 자연관에 기저를 두고 생명의 문화 재건을 제창한다.

 우리 선조들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후손들은 무분별한 서구화(西歐化)에 휩쓸리면서 선조들의 생명존중 문화를 잊고 있다. 아름다운 생명존중 풍속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잊히고 있는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생명존중 풍속을 여러모로 살펴보면서 당면한 자연보전과 생명존중 풍속 회복의 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일상적 생활에서 생명가치를 구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의 전통문화 풍속에 담겨 있고 연면해 오는 생명존중 사상을 되찾아서 되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돼온 민담(民譚)에서 생명존중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구비전승(口碑傳承) 풍속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공생(共生)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고수레` `까치밥` `자연보호와 관련된 금기어` 등을 들 수 있다.

 고수레란 성묘나 산놀이, 들놀이, 물놀이에 가서 갖고 간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고수레`(또는 `고시레`)하고 소리치면서 자연에 기별을 하고 허공에 던지거나 뿌리는 민간신앙 행위를 말한다. 이는 고수레를 하지 않고 먹으면 체하거나 탈이 난다는 속신과 더불어 전국 도처에서 행해졌다.

 최남선은 고시레와 고사와 굿을 같은 어원에서 나온 의례라고 풀이하나, 이 말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수레의 음식을 신(?)이 먹는 것이 아니라 벌레나 짐승들로 하여금 먹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눌 뿐만 아니라 들짐승과 벌레와도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고사(告祀)는 가신(家神) 신앙의 의례로 어떤 큰 일을 도모하거나 가족의 안녕을 위해 가신들에게 음식물(주로 팥 시루떡, 또는 백설기)을 바치고 비는 행위를 말한다. 주목할 것은 고사음식은 이웃과 반드시 나눠 먹는다는 것이며, 사람들은 동시에 그 음식물의 일부를 집안 곳곳에 있을 법한 귀신(?)과 대문 밖이나 나무 등에 놓아두지만 실제로는 벌레나 짐승들이 먹도록 한다는 것이다.

 고사는 가정주부들 소관이다. 그들은 만유영유론(萬有靈有論; animatism)을 믿으며 자연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러므로 가신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地)을 함부로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려 한다. 그들에게서 인간과 자연과의 `나눔`을 찾아 볼 수 있다.

 까치밥은 감나무나 과일나무 열매를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일부를 까치나 동물들 먹이로 남겨놓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나눔을 의미하며 한국인의 자연과의 공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이 사용한 금기어(禁忌語)에서 생명존중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동물의 생명보호와 관련된 금기어로는, "까치나 제비를 죽이면 죄를 입는다" "매미를 잡으면 가뭄이 온다" "방 안에 들어온 날짐승을 잡으면 화재가 발생한다" 등이 있다. 식물보호와 관련된 금기어로는. "큰 나무를 베는 사람은 쉬 죽는다" "고목(오래된 나무)이 쓰러지면 흉사가 난다" "나무를 많이 때면 산신령에게 미움을 받는다" "집안에서 기르던 식물이 말라 죽으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땅을 파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어린 아이가 실없이 땅을 파면 부모가 죽는다"는 금기는 땅을 함부로 파헤치지 못하게 하는 자연보호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까치나 제비가 보은(報恩)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민담(民譚)에서 선조들의 동물애호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소도 사람처럼 질투를 할 수 있어서 소가 듣고 있는 곳에서는 소의 능력을 함부로 비교평가하지 마라는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처럼 선조들은 동물을 의인화해 동물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동물을 사랑할 줄 알았다.

 농부들은 추운 겨울에는 소에게 쇠죽을 끓여주고 방한용 덮개를 씌어준다. 농사나 군용으로 부려먹던 우마(牛馬)는 함부로 도살하지 않고 장사를 지내주기도 했다. 또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야산에 먹을 것이 없는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마을로 내려오면 그런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았다.

 구비전승된 민담을 우리가 오늘날에 그대로 다 따르거나 모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아름다운 생명존중 사상을 결코 잊
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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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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