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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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② 규범적 사회생명

의로움 통해 사회생명 의미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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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은 보편적 자연생명의 차원에서 다른 생명과 관계하며 생명성을 유지한다. 인간도 다른 생명체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종속영양생명체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덕성을 추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따라서 인간 삶에서 사회적 관계는 생명의 사회적 차원을 나타내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듯 인간이 다른 존재와의 관계, 특별히 다른 사람과의 의례적 관계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을 생명의 규범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이 규범적 차원을 동양에서는 예로 표현한다. "예로 선다"고 하는 공자 말씀은 생명의 사회적 의미를 잘 함축하고 있다.

 예는 본래 희생을 바치는 의례에 연원하기에 생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공자는 예를 통해 인간의 자연생명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밝혔다. "생명의 본질은 정직함이다. 정직하지 않게 사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인간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이다. 사람이 살면서 삶의 규범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목숨만을 부지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인간생명의 의미는 사회적 삶 안에서 필연적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생명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공자가 사랑하는 제자 안회와 백우의 죽음을 대면하는 가운데 나타난 인간의 숙명적인 자연생명의 한계성 앞에서 스스로 하늘의 뜻을 묻는다.

 인간은 묻는 존재다. 인간의 질문 가운데 생명에 관한 질문은 가장 실존적이다. 공자도 제자들에게서 생명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자로가 말했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한 질문 다음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자로의 질문에서 공자는 죽음의 의미가 삶 속에 있음을 가르친다. 실로 사회적으로 죽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살아있으나 죽은 삶과 죽었으나 살아있는 삶의 생명현상에서 삶과 죽음으로 분리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삶을 안다는 것은 바로 생명의 사회적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이 자연생명에 머물지 말고 사회생명으로 나아가도록 깨우쳤다. 사회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에 깨달아야 할 가치가 의로움이다. 공자는 의로움을 위해 자연생명을 포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내주어라." 그러나 사회생명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공자 스스로 나이 오십에 이르러 사회생명의 의미를 깨우쳤다〔五十而 知天命〕고 고백했다. 이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은 사회적 소명의 차원에서 사회생명을 부여 받았으며, 인간의 자연생명은 궁극적으로 사회생명 안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맹자는 사회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근거를 밝혔다. 맹자에게 관계를 구성하는 실체는 다름 아닌 마음의 성향이다. 이미 공자가 언급한 `성상근`(性相近)의 `성`은 마음의 기호〔性〕로서 사람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도덕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 생명은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완성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맹자의 관심은 생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성향〔性〕과 생명력〔氣〕에 있다. 고자와의 대담은 바로 그의 생명담론이 성과 기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맹자가 말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돼 있는 `남의 고통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바로 인간의 선천적 마음의 성향이다. 이 마음의 성향은 자기 생명에 대한 관심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자기 생명을 의미를 확충하는 생명의 기호이다.

 그리고 `기`란 내적으로 생명의 원천인 천(天)으로부터 부단히 생명성을 부여받아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외적으로 사회적 생명성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공자의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견위수명(見危授命)을 잇는 맹자의 도덕적 사회생명관인 사생취의(舍生取義)는 인간 생명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를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므로 의로움은 인간의 사회생명의 본질로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서 살게 하고, 개인의 자연생명이 사회적 의미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다. 실로 전통적 사회생명관은 생명이 사회적 관계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생명이 의로 조화를 이룰 때 이상사회가 우리 앞에 현재함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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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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